떠난 젊음을 그리워하지 말자
미용실 자동문이 열리자 밝은 조명이 나를 맞아준다. 안내데스크에서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고 대기한다. 요즘 미용실은 예약을 해야 한다. 잘하는 미용실은 특히 더 그렇다. 나는 오랫동안 이렇게 커다란 미용실에 가는 것을 어려워했다. 엄마가 미용실을 했으므로 타인들이 하는 미용실에 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익숙한 미용실의 그 냄새를 맡으면, 뭔가 엄마와의 서걱거리는 관계에 대한 기억이 환기되어 아직도 타인들의 미용실에 가는 것이 조금은 어렵다.
엄마는 결혼 전에 명동에서 한때 날리던, 요즘 말로 하면, 탑 헤어 디자이너였다. 그런 엄마가 결혼을 하고도 3년 동안 미용실을 운영했으나 아버지가 그 일을 싫어하셔서 그만두고, 이후로 쭉 살림만 했었다. 그 일을 다시 하게 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도 몇 년이 지나서였다. 살림만 하던 엄마가 손이 굳어버려, 그 일을 다시 하게 될 때까지는 긴 시간의 망설임이 있었다. 아버지의 퇴직금으로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하다가 싹 날려먹은 후에야, 비로소 잠재되어 있던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마흔이 훌쩍 넘은 나이에 다시 도전하는 미용일은 엄마를 살게 하고, 동생의 재수, 삼수, 그 후로도 계속되는 학비를 벌게 해 주었다. 그리고 칠십이 넘도록까지, 삼십년동안이나 그 일을 하셨다. 천복으로 받은 일은, 그렇게 나이를 먹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엄마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런 엄마가 대단하게 보였지만 당신이 놓기 싫은 일을 나더러 물려받아서 하라고 할 때는 정말 신물이 났다. 와,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끄적거리고 있다.
각설하고, 나는 오늘 매직 파마를 했다. 오랫동안 굽실굽실한 파마머리를 유지했었는데 생머리 찰랑거리는 느낌이 그리워서 머리카락을 쫘악 폈다. 언제부터인가 머리카락이 자꾸만 빠져서 생머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퍼뜩, 더 나이 들면 아예 못 할 거 같아서 해 버렸다. 아, 그러나, 후회한다. 내가 상상한 모습이 아니다. 집에 와서도 거울을 연신 본다. 거울 속의 나를 꺼내고 싶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매만지고, 반짝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르시시즘의 광채를 만끽하던 어떤 날이 신기루처럼 떠오른다. 무엇을 걸치던 빛이 나고, 예뻐 보일 거라는 착각마저도 진실이었던 젊음은 이미 오래전 떠난 거다. 다시 거울을 본다. 무언가 결핍된 얼굴을 그렇게 한참 들여다보다가,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직 ‘흰머리가 없으시’다고, ‘어떻게 머리 색깔이 염색한 머리처럼 이렇게나 예쁜 밝은 갈색’이냐고 놀라워하던 미용사의 말을 떠올리며,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