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게 자른 음식 속에 담긴 뜻

0.1cm의 다정함

by 이은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 속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단다. 네가 어떤 것을 집을지 아무도 모르거든."


열다섯 1994년의 여름, 아빠를 떠나보낸 내 상자 속에서 나온 초콜릿은 쓰고 딱딱해 씹기 힘든 것들뿐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슬픔의 농도가 여전히 짙다고 느꼈던 1995년의 어느 날, 엄마를 따라 충북 음성 꽃동네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그날 그곳에서 내게 주어진 일은 커다란 스테인리스 통에 든 반찬을 가위로 잘게 다지는 일이었다.


"더 잘게, 거의 죽처럼 느껴질 정도로 계속 가위질해야 해."


구역 담당자로 보이는 분이 연신 하신 말씀이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욱신거렸다. 멀쩡한 반찬을 다 으깨놓는 이 지루한 노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없어 가위질은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철부지 중학생 소녀는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 의미를 깨달은 것은 식사 시간이었다. 밥상 앞에 앉은 아이들은 입을 제대로 벌리지 못하거나 치아가 없었다. 잘게 자른 음식조차 제대로 씹지 못해 온몸으로 힘을 쓰며 삼키고, 때로는 삼킨 것보다 더 많은 양을 뱉어내고 있었다.


내가 '망치고 있다'라고 생각하며 짜증 냈던 그 으깨진 반찬들이 이 아이들에게는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알맞게 다듬어진 유일한 음식이었다. 거친 가위질 끝에 담겨야 했던 것은 짜증이 아니라, 잘라진 음식조각이 아이들의 목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는 간절한 바람이었어야 했다.


이어서 경이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아이들이 음식을 흘리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옷자락을 붙잡아도, 복지사선생님들은 환한 웃음으로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그 다정함에 매료된 순간, 그들의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서른 해도 더 지난 지금, 나는 매일 아침 교실 문을 열며 마음속 가위를 꺼낸다. 세상의 지식은 우리 아이들에게 뚜껑조차 열기 힘든 딱딱하고 커다란 초콜릿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르칠 내용들을 아주 잘게 쪼갠다. 아이가 거부감 없이 세상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지식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깎아낸다. 열 번을 가르쳐 아홉 번을 뱉어내는 하루일지라도 포기하지 않는다. 아이의 속도에 내 걸음을 맞추며, 삼키지 못해 다시 뱉어낸 조각을 다정히 닦아준다.


30년 전 꽃동네에서 보았던 그 신비로운 다정함을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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