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노동의 의미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 있는 것의 쓸모는 알지만, 쓸모없는 것의 쓸모는 알지 못한다."
세상이 말하는 쓸모란 대개 눈에 보이는 성과나 효율, 숫자로 증명되는 가치를 의미한다. 고등학생 시절의 나 역시 그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국어 단어를 외우고 수학 공식을 푸는 것만이 진짜 공부라고 믿었던 내게 학교 담장 너머로 보았던 어떤 풍경은 이해하기 힘든 '무용(無用)'의 장면이었다.
1990년대 후반, 친구네 동네를 지날 때마다 마주하던 불편한 풍경이 있었다. 넓은 밭에는 늘 밀짚모자를 깊게 눌러쓴 학생들이 있었다. 뙤약볕 아래서 흙을 고르는 그들을 보며 주변 어른들은 혀를 찼다.
"저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는 않고 왜 맨날 농사일만 할까? 저기가 학교는 맞는지 모르겠네."
그 말을 듣는 나의 고개도 끄덕여졌다. 우리는 교실에서 펜을 굴리며 입시 전쟁을 치를 때, 또래로 보이는 저들은 왜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밭일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다.
시간이 흘러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 풍경의 진실과 우연히 마주했다. 그곳은 특수학교였고, 그들은 고생이 아닌 삶을 배우는 현장에 있었던 것이다. 화면 속 특수교사는 서툰 손짓으로 흙을 만지는 아이를 채근하지 않았다. 학생의 속도에 맞춰 기꺼이 기다렸고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아이가 수확한 감자 하나를 들고 세상을 다 얻은 듯 웃을 때, 선생님은 그보다 더 밝은 미소로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이 아이들에게는 흙을 만지고 생명을 키워내는 과정은 세상과 만나는 훌륭한 통로입니다. 삶을 온전히 살 수 있게 돕는 공부이기도 하죠."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덜컹거렸다. 딱딱한 칠판 앞이 아니라 살아있는 대지 위에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저 직업. '특수교사'라는 이름이 내 마음속에 선명한 꿈의 씨앗으로 심어졌다.
특수교육에서의 농생명은 단순히 작물을 키우는 기술만을 배우는 교과가 아니었다. 수학 문제 하나를 푸는 것보다 정성 들여 키운 상추 한 잎을 무사히 따내는 것이 장애학생들의 자립에는 훨씬 더 실질적인 쓸모가 된다. 담장 너머로 보았던 밀짚모자는 소외된 노동을 위한 도구가 아닌 세상이라는 거친 밭에 나갈 준비를 하는 아이들의 소중한 도구였다.
누군가는 묻는다.
"한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교육이 무슨 소용인가요?"
하지만 이들이 받는 특수교육은 세상을 향해 단 한 발자국이라도 스스로 내딛게 돕는 가장 쓸모 있는 교육이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 곁을 지키는 특수교사라는 내 직업에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는 아이들이 비바람을 견디면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사람이며, 작물이 자라듯 아이의 작은 변화를 기다릴 줄 아는 정원사이다.
오늘도 나는 흙을 일구어 생명을 길러내는 농부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삶을 가꾸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