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호기심

등 뒤에 선 교사가 사명이 되어가던 시간

by 이은서

전공 서적 속 회색빛 이론들이 실제 아이들의 숨결과 부딪히며 파란 불꽃을 일으켰던 시기. 2004년 5월, 청주에서의 4주는 특수교사에 대한 작은 호기심을 평생의 사명으로 익게 만든 시간이었다.


정서장애 특수학교에서 동기 둘과 함께 교육실습을 했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불타던 우리 실습생 셋은 똑같은 체육복을 맞춰 입었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해 현관 바닥을 청소하는 것으로 매일 아침을 시작했다. "기특하다"는 선생님들의 칭찬에 빗자루질 소리는 더욱 힘차졌다.


내가 배치된 초등부 3학년 2반은 보통 교실의 6분의 1 크기에 불과한 작은 공간이었다. 대부분은 8명의 아이와 숨 가쁘게 부대끼면서 교실 수업을 했지만 매주 토요일은 항상 '특별한 외출'을 했다.


드디어 토요일!

우리 반은 당연하다는 듯 신발 끈을 조여 매고 학교 밖으로 나갔다. 슈퍼마켓, 문구점, 공원… 그날만큼은 지역사회 곳곳이 우리의 교실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현장학습을 나간 어느 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담임 선생님께서 내게 질문을 던지셨다.


"교생 선생님, 아이들을 이끌 때 교사는 대열의 어디에 서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

"아무래도 길을 안내해야 하니, 맨 앞이 아닐까요?"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며 우리 대열을 떠올려보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늘 실무원 선생님이 앞에서 길을 잡으셨고, 담임 선생님은 맨 뒤에서 대열을 따랐었다.


"앞에서 끌면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어. 하지만 뒤에 서면 아이들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다 눈에 들어오지. 누가 발걸음이 무거운지, 누가 옆길로 새려 하는지… 교사는 뒤에서 아이들의 전체적인 흐름을 책임져야 하는 거야."


교사의 위치는 항상 앞이어야 한다는 내 생각에 금이 가던 순간이었다. 그날의 가르침 덕분에 지금도 아이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맨 뒤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때가 더 잦다.


또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마트에서 직접 산 라면 봉지를 들고 시내버스를 이용해 담임 선생님 댁으로 향했던 날이다. 좁은 주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보글보글 라면을 끓여 먹던 시간. 학교를 벗어나 세상 속 어엿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생생한 수업장면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토요일의 외출은 담임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과 언성을 높여가며 쟁취해 낸 결과물이었다.


"교실 안에서만 가르치는 건 죽은 교육입니다. 장애아이들이 진짜 살아가야 할 곳은 세상이에요!"


그 신념 하나로 본인의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신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특수교사의 전문성이란 아이들을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더 내딛게 하려는 치열한 투쟁에서 나온다는 것을 배웠다. 교장 선생님의 반대를 뚫고, 자신의 집을 개방하며 아이들의 손을 잡고 세상으로 향했던 선생님의 뒷모습은 나에게 가장 훌륭한 교과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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