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과정보다 결과

어느 수험생의 기록

by 이은서

인생에는 과정의 아름다움보다 결과로써 내보이는 증명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순간이 있다. 내게는 임용고사가 그랬다. 그것은 단순히 직업을 얻는 수단이 아니라, 새벽부터 일을 나가시는 고단함 속에서 사셨던 엄마와 노점을 운영하며 번 돈을 내 강의비로 내어준 남동생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임용 합격은 세 식구 전체의 꿈이었다. 노점에서 거친 바람을 맞으며 번 돈을 쓱 내밀며 "누나, 인강 들어"라고 말하던 남동생. 그 돈이 동생의 고단한 하루라는 것을 알았기에 결제 버튼을 누를 때마다 모니터가 흐릿해질 정도로 울었다.

엄마는 매일 아침 독서실로 향하는 내 손에 따뜻한 도시락을 쥐여주셨다. 그 정성에 보답하기 위해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30자루가 넘는 볼펜을 갈아치우면서 공부했다.


시험 준비 중, 돌아가신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였다는 사실 덕분에 가산점 10점이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합격을 결정지을 어마어마한 점수였지만, 당시엔 그 사실이 시험을 준비하는 내게 그리 큰 안정감을 주지는 못했다. 엄마도 "그 점수가 있다고 해도 시험을 못 보면 떨어지는 거잖아. 아예 없는 셈 치고 공부하자."라고 말씀하셨다. 20년을 온전한 자유 없이 전방을 지키던 아빠가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아빠의 잦지 않았던 퇴근을 힘겹게 기다려온 꼬맹이 시절에 주어지는 위로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실력에 더해지는 보너스이지, 내 노력의 대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가장 든든한 보험을 들고도 보험이 없는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살았다.


시험 당일, 엄마와 함께 시험장소로 향했다. 긴장되는 마음에 등 뒤에서 들리는 엄마의 응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시험지를 받았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 했잖아. 괜찮아. 잘할 수 있어.' 긴장을 쓸어내며 펜을 잡았다. 헛, 답을 쓰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공부했던 것들이 문제를 읽을 때마다 쏙쏙 기억났다.

시험을 모두 마치고, 좋은 표정으로 시험장을 벗어나 교문을 나서기 전, 나는 그만 그 자리에 멈춰서 버렸다. 새빨개진 손과 볼의 엄마가 보였다. 지독하게 추웠던 그날, 엄마는 손과 볼이 빨갛게 얼어붙은 채 몇 시간 동안 교문 앞을 떠나지 않고 서 계셨던 것이다. 기도를 하듯 서 있는 엄마를 본 순간 나보다 더 떨었을 엄마가 한없이 안쓰럽고 아주 많이 미안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1차와 2차 시험이 모두 끝나고 합격자 발표일이 되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홈페이지를 열어 합격여부를 확인했다.


"엄마! 나 합격이야, 합격!"


엄마와 부둥켜안고 울고 웃으며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 행복했다.


'합격!'

나를 특수교사의 문턱으로 인도해 준 열쇠이자, 가족의 헌신과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 고통스러운 과정이 빚어낸 결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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