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아야 할 이유
살다 보면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바꾸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내게는 신규 교사 연수 기간 중에 있었던 대학교 졸업식이 그렇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헛웃음과 함께 진한 후회가 밀려온다.
임용 합격 후 6명의 동기와 연수원 근처 하숙집에서 복작거리며 지내던 시절. 아침마다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고 "선생님"이라는 설레는 호칭을 등에 업은 채 연수원으로 향하던 길은 참으로 행복했다. 일정이 빽빽했지만 저녁이면 시원한 맥주 한 잔에 미래의 교실을 상상하며 깔깔거렸다. 인생에서 가장 마음 편했던 황금기였다.
연수 기간 중에 있던 대학교 졸업식 날짜가 다가왔다. 동기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평생 한 번뿐인데 가야지!"
"첫 연수인데 빠지는 게 마음에 걸려."
나를 포함한 3명은 결국 졸업식을 포기하고 강의실을 지켰다. 그날의 수업은 공문서 작성법이 포함돼 있었다. 학교 현장에서 제일 중요하다기에 눈을 반짝이며 앉았다. 하지만 업무 포털에 접속할 인증서가 없던 우리에게 그 수업은 그저 남의 집 구경하기에 불과했다.
강의실 의자에 앉아 검은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뒤늦게 씁쓸한 후회가 밀려왔다.
'이럴 거면 왜 졸업식에 안 갔을까… 지금쯤 다들 학사모 던지고 난리 났을 텐데.'
진짜 마음이 무거웠던 건 엄마 때문이었다. 홀로 남매를 키우며 고생한 엄마에게 딸의 대학교 졸업식은 당신 인생의 커다란 결실이자 자랑이었을 것이다.
"딸, 엄마는 가고 싶은데 네가 알아서 결정해."
"엄마, 연수가 더 중요해. 대신 내가 대학원도 갈 테니 그 졸업식엔 꼭 가자."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말했을까. 임용 합격이라는 결과는 안겨드렸지만 엄마의 머리에 학사모를 씌워드리고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 한 장이 우리에겐 없다. 성실함이라는 명목하에 소중한 순간을 유예했던 그날의 선택이 못내 속상하고 후회된다.
그렇다고 후회만 있었던 건 아니다. 연수생 시절 나를 가장 설레게 한 건 교직원 전용 신용카드 발급이었다. 이름도 거창한 '교육사랑카드'. 연수원에서 신규교사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았고 나는 그 신청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며칠 뒤 내 이름이 선명하게 박힌 카드를 손에 쥐었을 때의 전율을 잊을 수 없다.
"얘들아 봐봐! 여기 내 이름이 있어. 나 이제 진짜 선생님이야!"
지갑 속에 꽂힌 카드를 몇 번이고 꺼내 보며 좋아했다.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묵직한 자각이 졸업식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작은 훈장처럼 느껴졌다.
그 후회 덕분에 아이들과 나누는 눈 맞춤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소중한 것은 늘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중요해 보였던 공문서 작성도 실무 이틀이면 절로 익혀지는 것이었다.
"소중한 것을 결코 다음으로 미루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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