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이타심으로 바뀌던 순간
1994년 나의 여름은 병원의 길었던 하얀 복도와 알싸한 소독약 냄새로 박제되어 있다. 간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빠를 동생과 함께 면회하고 당시 머물던 이모댁이 있던 대전으로 돌아가던 일요일 오후. 영등포역 광장의 소란함은 아빠를 병실에 두고 떠나야 하는 남매의 적막한 슬픔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기차를 타기 전, 우리는 역 근처 도미노 피자매장에서 조각 피자를 먹곤 했다. 하지만 아빠 없는 삶을 준비해야 한다는 막연한 공포가 목구멍을 막아, 치즈가 고소하게 녹아있는 피자는 늘 속절없이 식어갔다. 그때였다. 매장의 문이 열리면서 달랑이는 종소리가 들렸다. 종소리와 함께 들어온 땟자국이 역력한 옷차림의 한 아이가 우리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 전광석화처럼 손을 뻗어 내 손에 들려 있던 피자 조각을 낚아채 달아났다.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질러야 마땅한 상황. 하지만 황망한 내 손바닥을 보면서 밀려온 것은 해일 같은 가여움이었다.
"배가 엄청 고픈가 봐... 그냥 말하지, 사달라고. 먹던 건데, 오히려 미안하게."
아빠를 잃어가는 나의 처지가 가여웠기에, 피자 한 조각을 훔쳐 달아나야만 했던 그 아이의 삶은 대체 얼마나 시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빼앗긴 분노보다 온전한 한 판을 사주지 못한 미안함이 가슴을 쳤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성인이 된 남동생은 그날의 나를 이렇게 기억했다.
"누나가 특수교사가 된다고 했을 때, 난 그날 피자 가게에서의 누나가 생각났어. 그때 누나 눈빛이 참 단단했거든."
그리고 깨달았다. 열다섯에 겪은 지독한 상실감이 역설적으로 타인의 고통을 예민하게 감지하는 마음의 근육을 만들어주었음을. 아빠가 남겨주신 마지막 선물은 슬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슬픔을 통과해 얻어낸 곁을 내어주는 마음이었다.
지금 나의 교실에는 그날의 피자 도둑과 닮은 아이들이 들어온다. 남의 물건을 낚아채거나 맥락 없이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욕구를 표현할 줄 몰라 서툰 몸짓을 하는 아이들. 누군가는 그들을 보며 혀를 찰지 모르지만, 나는 그 거친 행동 너머에 숨겨진 깊은 갈구를 본다.
열다섯 은서가 내뱉었던 그 다정한 중얼거림은 이제 20년 차 특수교사의 철학이 되었다. 아이의 돌발행동 뒤에 숨겨진 배고픔을 읽어내고, 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시키기보다 할 수 있는 작은 하나를 기어코 찾아내는 일. 30년 전 영등포역에서 시작된 그 애잔한 식사는 여전히 내 교실에서 진행 중이다. 그것이 아빠가 내게 가르쳐준 슬픔을 가장 가치 있게 수확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