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열지 못한 문턱 너머의 아이에게
기억은 때로 풍경이 아니라 촉감으로 남는다. 내게 1987년 강원도 화천의 기억은 코끝을 스치는 찬 공기와 운동장의 텁텁한 흙먼지 냄새로 각인되어 있다. 국민학교 1학년, 수업 종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운동장 한복판에는 한 아이가 섬처럼 덩그러니 서 있었다.
"쟤랑 놀지 마, 바보래."
친구의 속삭임에 이끌려 교실로 향하면서도,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왜 저 아이는 우리와 함께 공부할 수 없는지, 바보라는 낯선 이름표는 왜 저 아이의 등 뒤에 붙어 있는지 여덟 살의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이후 여러 달이 지나 2학년이 되어 그 아이와 같은 반이 되었을 때, 반가움보다 먼저 마주한 것은 아이들의 날카로운 가시였다.
"바보야, 나는 바보입니다 해봐!"
놀림과 비아냥이 교실을 채웠고, 뒤늦게 들어온 담임 선생님은 괴롭히는 아이들을 꾸짖는 대신 그 아이의 손목을 오물 치우듯 낚아채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날 이후, 그 친구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학교 끝자락, 낡은 창고 옆 어딘가에 있을 그 아이의 교실은 내게 막연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그때 느낀 무서움은 아이 때문이 아니라, 다름을 격리하고 배제하던 시대적 야만이 뿜어내던 서늘한 냉기였다는 것을.
40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특수교사가 되어 매일 아침 교실 문을 연다. 1987년의 내가 끝내 용기 내지 못해 다가가지 못했던 그 문턱을, 이제는 가장 환한 미소로 열어젖힌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을 향해 반가운 인사를 날마다 전한다.
"어서 오세요. 오늘도 선생님과 재밌게 놀자."
나는 어쩌면 평생, 이름조차 몰랐던 그 아이에게 건네지 못한 미안함을 갚기 위해 이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 홀로 서 있던 그 작고 외로운 등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나는 아이들의 거친 머릿속을 다정히 쓰다듬으며 그 시절의 부채감을 소명으로 바꾸어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