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함 속에서 깨달은 교훈
나의 안전 철학이 다져진 건 발령 첫해 5월의 어느 날이었다. 퀴퀴한 5평 창고 교실을 벗어나 복지원 내에 새로 지어진 건물로 이사한 직후였다. 새 교실의 창문을 활짝 열면 산속의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개방감이 좋아 나는 창문을 끝까지 밀어 열어두곤 했다.
쉬는 시간이었다. 다음 수업 준비물을 챙기려 교실 옆 사무실 수납장으로 향했다. 학생들을 등진 채 색지와 가위를 챙기던 찰나, 마당 아래에서 날 선 비명이 들려왔다.
"태훈아! 거기서 손 떼! 선생님!"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불길함이 엄습했다.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 뒤돌아 달려간 교실, 그곳에는 평소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열다섯 살 태훈이가 2층 창틀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있었다. 몸의 반은 이미 창밖 허공으로 나간 위태로운 상태였다.
깜짝 놀란 나와 달리, 아이는 시원한 바람이 좋은지 양손을 입에 넣고 베슬베슬 웃고 있었다. 자극을 주면 놀라 추락할까 봐 발소리를 죽여 다가갔다. 떨리는 손으로 학생의 축축한 두 손목을 단단히 맞잡고 교실 안으로 끌어당겼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태훈이의 몸이 바닥으로 내려앉았을 때야, 참았던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명백히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움직임이 컸던 수업을 위해 벽면으로 밀어두었던 책상과 의자들이 활짝 열린 창문 아래에서 훌륭한 계단이 되어준 것이다. '잠깐인데 별일 있겠어'라는 안일함이 태훈이를 2층 높이의 난간으로 밀어 올린 셈이다.
나의 부주의가 태훈이를 다치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한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했다. 단순한 실수가 아닌 교사의 자격을 묻는 꽤 아픈 채찍질 같았다.
그날 이후 나의 모든 습관이 바뀌었다. 가위와 칼은 사용 즉시 수납장에 넣어 열쇠로 잠갔고, 교사 책상 위는 늘 비워두었다. 그리고 그때 탄생한 나의 수업 원칙이 바로 수업 바구니다. 단 몇 초라도 준비물을 가지러 학생 곁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었기에, 수업 전날 모든 자료를 바구니에 완벽히 담아두기 시작했다. 종이 치면 바구니만 쏙 꺼내 수업을 진행하고, 끝나면 통째로 집어넣는다. 이 사소하고 면밀한 준비가 내가 학생들을 사랑하는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되어주었다.
다음 날, 복지원 원장님은 모든 창문에 튼튼한 안전바를 설치해 주시며 오히려 나를 다독여 주셨다. "미리 살피지 못해 미안해요."라는 그 따뜻한 배려 덕분에 나는 다시 학생들을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학생의 돌발 행동을 원망하기보다 그 행동을 유발한 환경을 먼저 돌아보는 법. 안전이라는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슴에 새긴 시간이었다. 그날의 아찔한 기억은 여전히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지만, 상처가 아문 자리에는 면밀함이라는 단단한 굳은살이 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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