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몸짓도 되지 않는 학생과 대화 하는 법
영화 <오아시스>의 여주인공 공주는 뇌병변 장애인이다. 뒤틀린 몸으로 고립된 방에 살던 그녀가 햇살 아래서 자유롭게 춤추는 판타지 장면을 보며,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의문 하나를 품었다.
‘말도 몸짓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만난다면, 나는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까?‘
첫 발령지에서 나는 그 영화의 잔상을 마주했다. 신체적 제약이 너무 심해 휠체어에 옮겨 타는 것조차 버거워 교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다섯 명의 제자. 그들은 뇌병변과 지적장애를 동시에 지닌 중복장애인이었다. 25살이었던 나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이었다.
방문을 여는 순간 본능적으로 숨을 멈춰야 했다. 성인 남성 다섯 명이 24시간을 보내며 흘려내는 침과 대소변 냄새가 방 안 가득 고여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겨우 까딱이는 것이 소통의 전부인 그 침묵의 방 안에서, 나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을지 깊은 혼란에 빠졌다.
일주일에 두 번, 한 명당 한 시간씩 마주하는 1대 1 수업.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절벽 같은 침묵 앞에서 나는 고민 끝에 영아 전담 어린이집을 찾아갔다. 베테랑 선생님은 내게 한 줄기 빛 같은 조언을 건넸다.
"선생님,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교사의 에너지예요. 선생님이 가장 잘하는 걸 무기로 그저 함께 놀아준다고 생각하세요."
그 말은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려 있던 내 어깨의 짐을 덜어주었다. 나는 이제 방에 들어서면 학생 옆에 바짝 다가가 나란히 눕는다. 내려다보는 교사가 아니라, 같은 지면에서 함께 천장을 바라보는 동료가 되기로 한 것이다.
"현수 씨, 저 왔어요! 오늘은 제가 진짜 좋아하는 노래 들려줄게요!"
학생의 시선이 머무는 허공에 손을 흔들며 노래를 시작했다. 굳어 있는 학생의 손가락을 부드럽게 펴 내 뺨에 대보기도 하고, 손바닥 위에 '후~' 하고 간지러운 숨을 불어넣기도 했다.
"짤랑짤랑! 방울 소리예요. 현수 씨, 소리가 어디서 날까요?"
눈동자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아주 미세하게 이동할 때, 나는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환호했다. 무표정하던 학생의 입꼬리가 움찔하거나 강직된 손끝에 미세한 힘이 들어올 때면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그것은 영화 속 환상보다 더 아름다운 실제의 교감이었다.
수업의 마지막은 항상 처음처럼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오늘 우리 참 잘 놀았다. 그렇죠? 제가 노래는 못해도 진짜 신났죠?"
대화란 반드시 음성을 내뱉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는다. 서로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며, 상대의 고요함 속에 담긴 미세한 떨림을 포착하려는 성실한 마음이다. 비록 말은 없었지만, 학생의 눈동자가 움직일 때 그것은 긍정이었고 손가락 끝의 작은 힘은 반가움이었다.
더 이상 그 방이 두렵지 않았다. 함께 천장에 비친 햇살을 보고 그림책의 선명한 색감을 나누는 시간만큼은, 그 좁은 방이 우리만의 '오아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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