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마"

나의 첫 제자들

by 이은서

스물다섯, 첫 발령을 받고 만나게 될 학생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때마다 항상 사뿐사뿐 걸어와 "선생님!" 하고 안기는 귀여운 꼬마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산속 복지원 파견학급에서 만난 첫 제자들은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이 대부분이었고, 적더라도 이미 초등학교는 졸업했어야 할 나이의 청소년들이었다. 학령기를 훌쩍 넘겨서야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늦깎이 제자들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덜컥 겁도 나고 당황스러웠다. 나보다 덩치가 컸고, 외모도 이미 노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라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하루 종일 침 냄새 가득한 교실에 있는 것이었다. 쉴 새 없이 침을 흘리는 학생이 두 명 있었는데 그들에게 다가가야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춤하곤 했다.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울먹이며 하소연했다.


"코 말고 입으로 숨을 쉬어봐."


짠한 조언을 듣고서 의식적으로 입을 살짝 벌려 숨을 쉬기 시작하자 학생들 곁으로 한 뼘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냄새의 장벽을 넘고 나니 또 다른 과제가 보였다. 잠깐이라도 자기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좁은 교실이 늘 산만했다.

낡은 탁자와 의자에 색색의 페인트를 칠하는 수업을 준비했다. 서툰 손짓이었지만 큰 손을 맞잡고 노랑빛, 분홍빛으로 의자를 물들였다. 어디서든 자기가 직접 색칠한 의자를 사용하게 했다. 야외에서 수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겁더라도 반드시 자기 의자를 직접 챙겨 들고나갔다.

두 달쯤 지났을까? 학생들은 시키지 않아도 등교하자마자 자기가 꾸민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좁은 교실을 배회하던 소란이 잦아들고 제자리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학생들의 언행이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발화가 가능했던 두 명의 학생 중 한 명이 나에게 손을 뻗으며 불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학생이었다.


"엄마아, 엄마, 엄마마!"


그 순간 교실 공기가 순식간에 몽글몽글해졌다. 이후 이어진 말은 문장도 단어도 아닌, 알아듣기 힘든 낱자들의 나열이었지만 그 목소리 안에는 나를 향한 굳건하고 신뢰와 애정이 묻어났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호칭,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낱말로 나를 불러주었단 것이 감격스러웠다.


시간이 흘러 정이 깊어지니 나이와 외모는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덩치 큰 어른의 얼굴 뒤에 숨겨진 세상 누구보다 맑고 귀여운 아이가 보였다.


사람은 결코 입술의 언어로만 교감하는 게 아니며, 누구에게나 소통하고 사랑받고 싶은 맑은 영혼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를 "엄마"라고 부르던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도 귓가에 선명하다. 초보 교사의 막막함을 단숨에 녹여주었던, 참 소박하고도 간절했던 그 부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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