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에게 물린 날

선생님, 죽으면 안 돼요

by 이은서

평화로운 주말,

게임 '동물의 숲'을 하다 지네를 마주쳤다.

징그러운 다리와 지독한 통증에 대한 공포 때문에

내게 지네는 혐오 곤충 1순위였다.

그런데 그 공포가 가상이 아닌 현실이 되어

나를 덮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평범한 화요일 중간 놀이 시간,

아이들과 재활용 상자를 정리하다

바닥 깊숙이 놓인 유리병을 집어 들려

손을 깊숙이 뻗었다. 그 순간,

약지 끝에 '찌르륵, 쾅!' 하고 수만 볼트의

전기가 흐르는 듯한 강렬한 통증이 덮쳐왔다.


비명을 지르며 손을 빼자 검고 긴 생명체가

찰거머리처럼 매달려 있었다. 지네였다.

손가락엔 뱀의 독니 자국처럼

선명한 점 두 개가 찍혔고, 통증은 순식간에 번졌다.

식은땀을 흘리며 복도에 주저앉은 나를 보며

아이들은 많이 놀라고 말았다.


평소 아이들은 "급식 시간 외엔

급식실 근처에 가지 말라"는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하지만 그 순간, 아이들에게 규칙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선생님 죽으면 안 돼! 빨리 아무한테나 말하자!"


아이들은 교실에서 여러 실 중 우리 반에서

가장 가까운 급식실 문을 거세게 두드리며

절박하게 외쳤다. 그 덕분에 학교 전체에

비상이 걸렸고, 나는 119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응급실로 실려 갔다.

독성을 중화하는 주사를 맞고 나서야

요동치던 심장이 진정되었다.


병원 처치를 마치고 돌아온 교실,

아이들의 눈엔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 아이가 울먹이며 말했다.


"교장 선생님이 그랬어요. 우리가 재활용 제때 안 해서 지네 나온 거라고. 선생님이 우리 대신 물린 거라고."


사실은 방역 약효가 떨어질 때였을 뿐이었지만,

나는 굳이 진실을 설명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상자 바닥까지 샅샅이 뒤져

정돈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 따뜻한 거짓말을 이어가기로 했다.

그것은 교사로서 누릴 수 있는 유쾌한 보람이었다.


방과 후 수업 시간, 평소라면 내가 옮겼을

무거운 사다리꼴 책상을

아이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끙끙대며

교실 중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가만히 계세요! 손 아프니까 우리가 다 할 거예요."


어느새 책상 6개가 맞물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커다란 육각형이 만들어졌다.

아이들은 내 손을 조심스레 잡아당겨 앉히고는,

번갈아 가며 내 손등에 '후~ 후~'

정성 어린 입김을 불어넣었다.


"선생님, 이제 진짜 안 아파요? 지네 괴물 다시 오면 제가 발로 뻥 차버릴게요."


늘 가르쳐야 할 대상으로만 보았던 아이들이

다친 나를 지키고 보살펴주고 있었다.

지네가 남긴 상처는 아팠지만,

그 찰나의 고통이 남긴 아이들의 사랑은

영원한 기록이 되어 내 교직 생활의 빛나는

한 페이지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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