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더니, 채워졌다

by 이은서

특수학급 아이들에게 여행이란 늘 수동적인 기다림의 연속이다. 수학여행이나 현장 체험학습을 가더라도 학교에서 미리 짜놓은 일정표를 따라 버스 창밖을 구경하다 정해진 장소에 내릴 뿐이었다. 사실 여행까지 갈 것도 없다. 집 근처 문구점에 가거나 매일 다니는 학교에 가는 것조차 누군가의 동행 없이는 불가능한 아이들이 많다. 이들에게 외출이란 혼자만의 선택이 아닌, 누군가의 시간과 호의가 허락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네 번째 근무했던 학교에서의 마지막 겨울방학을 조금 특별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교사가 모든 것을 준비하는 여행이 아니라 아이들이 발걸음의 방향을 정하는 진짜 여행을 꿈꿨다. 고학년인 5, 6학년 학생 4명으로 인원을 제한하고, 그들을 교실로 불러 모았다. 아이들의 손에는 빈 종이 여러 장과 태블릿 PC, 그리고 길이가 제각각인 연필 한 자루씩이 주어졌다.

"얘들아, 이번 겨울방학에는 1박 2일로 우리만의 기차여행을 떠날 거야."

"우와! 진짜요? 우리끼리요?"

“맞아요.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만요.”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나의 다음 말에 들떴던 표정은 이내 당황스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장소도, 이동 수단도, 가서 먹고 즐길 모든 일정을 너희가 직접 정해야 해. 선생님은 너희들이 정한 대로 따라가기만 할 거야."

우리 동네에는 기차역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기차역에 들어가거나 실제로 기차를 타본 특수학급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기차역은 그저 우리 마을 풍경의 일부였을 뿐 어딘가로 나아가게 해주는 문은 아니었던 셈이다.

"눈빛을 보니 어렵다고 생각하는 듯 보이네.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하지만 선생님이 보기에 너희들은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러니까 해보자고 하지. 우리 동네에 있는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지역이 어디인지부터 알아볼까?"

나의 제안에 아이들은 태블릿 PC의 검색창을 띄웠다. 그중에서도 진성이의 눈이 유독 반짝였다. 진성이는 자타공인 기차 박사였다. 매일 같이 내 곁으로 와 “선생님 기차 뽑아주세요!”라며 기차 사진 인쇄를 조르고, 자유시간이면 넋을 잃은 채 달리는 기차 영상에 몰입하던 아이였다. 진성이의 손가락이 바빠졌다. 검색창에 동네 역 이름을 치자 서울, 천안, 익산, 군산 등 낯선 지명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한 곳을 가리키며 외쳤다.

"서울! 서울 가요, 선생님!"

아이들의 입가에 번진 설렘 가득한 미소를 보며 나도 씩 웃음이 났다. 교실 내에 즐거움이 넘실넘실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종이의 첫 장에는 아이들의 손으로 직접 쓴 '서울 기차여행'이라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적혔다.

여행 당일, 기온이 뚝 떨어진 차가운 겨울 새벽이었다. 오전 7시경 출발하는 기차를 타야 했다. 빽빽이 들어찬 일정을 소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 시각이었다. 4명의 아이는 보호자의 손을 잡고 일찌감치 대기실에 모여들었다. 6시 50분, 마지막으로 도착한 진성이는 할머니의 손을 놓자마자 손을 휘 훠이 저으며 말했다.

"할머니, 인제 그만 가요. 얼른 가요!"

진성이에겐 어린 손자와의 1박 2일 헤어짐이 마음 쓰여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의 걱정 어린 눈빛보다 기차여행에 대한 시대가 훨씬 컸던 모양이다. 머쓱해진 할머니를 대신해 내가 인사를 전했다.

"조심히 잘 다녀올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장소 옮길 때마다 매번 문자 드릴게요."

할머니께서 여러 차례 뒤를 돌아보시면서 역사 안을 나가셨다. 나는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 2주 전 미리 사두었던 실물 기차표를 한 장씩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표 속에 적힌 작은 글자들을 더듬으며 자기가 앉아야 할 좌석 번호와 출발 시각을 확인했다. 그때였다. 우리가 탈 기차가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쌤!!! 기차가 온대요!"

비교적 학습 능력이 뛰어난 영서가 안내 방송을 듣고 가장 먼저 일어났다.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의자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대기실을 나서 플랫폼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매일 영상으로만 보던 기차를 실제로 마주하게 된 진성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진성이가 카메라를 켜고 노란 안전선 가까이 다가가자, 주의를 주었다.

"진성아, 노란색 안쪽은 위험해. 뒤로 물러서자."

그러자 진성이는 군말 없이 두어 발짝 물러나 허리를 숙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화면 너머로만 보던 거대한 철마가 쇳소리를 내며 플랫폼에 멈춰 서는 광경을 아이들은 눈을 껌뻑이며 바라보고 있었다.

기차에 오른 아이들은 기차표에 적힌 번호와 의자 위의 번호를 대조하며 자기 자리를 찾아 앉았다. 교실에서 모의 연습을 했던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덜컹거리는 진동과 함께 기차가 미끄러지듯 출발했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익숙한 마을 풍경을 보며 아이들과의 진짜 여행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4년간 함께 한 아이들과의 이별을 앞둔 여행이라 나에게도 특별했다.

서울역에 도착했다. 우리가 마주한 풍경은 시골의 작은 역과는 차원이 달랐다. 거대한 역사 안을 가득 채운 인파와 복잡하게 얽힌 출구들. 아이들은 잠시 압도된 듯 주춤거렸다. 그때 이번 여행의 반장을 맡은 영서가 가방에서 구겨진 일정표를 꺼내 들었다. 첫 번째 장소는 남산이었다.

"우선 지하철을 찾아야 해. 얘들아, 내 손잡아. 여기서부터는 서로 진짜 잘 챙겨야 해."

영서는 넘어질 듯 위태롭게 걸었고, 발음이 어눌한 아이였다. 그래서 평소 도움을 받는 것이 익숙했던 아이였다. 하지만 반장이 되어 자신이 직접 짠 일정표를 손에 쥔 영서는 누구보다 듬직한 리더였다. 영서의 말에 다른 세 아이가 일제히 손을 맞잡았다. 사람 많은 서울역 한복판에서 서로를 놓치지 않으려 손을 꽉 잡고 있으니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지하철 무인 발권기에서 표를 사고, 노선도를 살피고, 개찰구에 표를 찍고, 복잡한 환승 통로를 지나는 매 순간이 아이들에게는 모험이었다. 나는 그저 뒤에서 길을 잃지 않게 지켜보며 응원하는 말을 전할 뿐이었다.

"어디로 가야 해요?"

"글쎄, 일정표에는 뭐라고 적혀 있어?"

아이들의 질문에는 되물으며 선택권을 넘겨주었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길가는 시민에게 용기 내어 길을 묻기도 하며 남산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 나아가는 시간은 더뎠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생기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했다. 그렇게 도착한 첫 체험학습 장소인 남산에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리려는 듯 “꺅!”하고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1박 2일의 여정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시간은 금세 흘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도 아이들의 에너지는 여전했다. 막차였던 탓에 지쳐 잠들 줄 알았던 내 예상을 크게 벗어나 있었다. 서울에서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직접 산 입장권을 보면서 끊임없이 여행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준 것은 기차표 한 장뿐이었다. 나머지 공간은 아이들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서로를 향한 배려로 채워졌다.

"선생님, 다음에 또 우리끼리 이렇게 여행하고 싶어요."

영서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빙그레 웃어 보였다. 아이들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서서히 알아갈 것이다. 삶은 교과서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 발을 내디딜 때 의미 있는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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