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되신 걸 축하해요

졸라맨 그림으로 소통하다

by 이은서

대학을 졸업하고 임용이 되는 순간,

나는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다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는다.

그 이름은 자격증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앞의 아이가 맑은 눈을 빛내며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창길이는 변화를 극도로 두려워하던 아이였다.

새 학기, 낯선 환경에 놓인 창길이는

자기 책상이라는 작은 영토 밖으로

단 한 걸음도 나오려 하지 않았다.

아이가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은

종합장 가득 그리는 졸라맨그림뿐이었다.


처음엔 그저 집착적인 행동이라 여겨

말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이의 곁에 앉아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칸마다 채워진 졸라맨들은 제각각

살아있는 몸짓과 말풍선을 달고 있었다.

창길이는 입을 여는 대신 졸라맨을 통해

학교라는 세상을 누구보다 치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그림을 대화의 창구로 삼았다.


"우와, 이 졸라맨은 급식실에 있네? 친구랑 무슨 말을 해?"라고 묻자, 창길이는 딱딱하지만 귀여운 목소리로 답했다. "급식, 맛있다. 친구, 같이, 먹는다."


금지해야 할 집착이라 생각했던 그림은

학습과 소통을 잇는 가장 강력한 매개가 되었다.

졸라맨으로 수학 문제를 풀고 국어 문장을 익히며,

창길이의 활동 반경은 조금씩 넓어졌다.

아이의 언어로 말을 걸어주자 나를 향한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6학년 졸업 날, 창길이가 졸업 가운을 입지 않겠다며

소동을 피웠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특수학급을 찾은 아이에게 펜과 연습장을 내주었다.

창길이는 현수막 아래 졸업 모를 쓴 졸라맨을 그린 뒤, 그 위에 커다란 엑스표를 그었다.


‘졸업식은 엑스’


정든 학교를 떠나 낯선 중학교로 가야 하는

두려움이 그 엑스표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종이를 넘겨 다음 장에 중학교 교문을 그렸다.

그 앞에 꽃다발을 든 졸라맨과

손뼉 치는 손들을 그려 넣었다.


"중학교에 가면 이렇게 멋진 꽃과 박수가 널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의 서툰 그림을 한참 바라보던 아이는

드디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졸업 가운을 입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아이의 두려움을

읽어준 것뿐이었다.


무사히 식을 마치고 돌아온 창길이가

내게 다가와 툭, 두 문장을 던졌다.


"선생님이 되신 걸 축하합니다. 제가 제자였어요."


그 말은 마치 '내가 기꺼이 제자가 되어줌으로써

당신을 진정한 선생님으로 탄생시켰습니다'라는

승인처럼 들렸다.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선생님이 된 것을 축하하며

아이들 앞에 선다. 이 귀하고 예쁜 존재들이 나를

"선생님"이라 불러주고 있기에,

나는 오늘도 기꺼이 그들의 세상을 함께 그려나가는

동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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