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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레나 Sep 18. 2022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자존감이 낮고 다른 사람 눈치를 잘 보는 내게도 장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생각 보다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를 더 많이 생각하는 것이 내게는 분명히 마이너스 요소이겠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가끔 장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 우리반 앵무새 시윤이가 아침에 씩씩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눈에 눈물이 글썽한 채로 엄마랑 싸워서 오늘 기분이 최악이라며 엄마가 미운 게 아니라 싫다고 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아침에 바쁜데 꾸물거리는 아이를 보고 엄마가 혼을 낸 모양이었다. 화가 나면 거친 말부터 쏟아내고 보는 시윤이는 아빠가 엄마랑 이혼을 했으면 좋겠다는 둥 엄마가 오래 오래 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던 것이 후회가 된다는 둥 한바탕 악담을 쏟아냈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봤을 때 시윤이가 하는 말들이 진심이 아님을 알기에 일단 손을 잡고 화부터 풀라고 이야기를 했다. 

시윤이가 속상했겠다 공감부터 해주고 엄마도 지금 마음이 편하지 않으실거야.  

선생님도 엄마라서 아침에 바쁠 때면 꾸물대는 아이들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단다.

그냥 이런 식으로 들어주고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악담을 쏟아내던 시윤이가 엄마한테 인사도 못하고 나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층 누그러진 말투로 고백을 했다. 

그러더니 대뜸 "선생님이 이렇게 내 이야기를 들어 주니깐 기분이 나아지네요." "선생님, 5학년 때도 우리 반 선생님 되면 안돼요?" 하며 내 마음을 훅 치고 들어온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내 감정을 이야기하고 공감받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속상해서 울면 "뭐 잘 했다고 우노?"와 함께 더 혼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내 마음이 이래서 속상하다는 이야기를 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누가 내 이야기를 들어 준 적도 없는 것 같고.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많이 안아줘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사실, 나는 침울해 하는 아이들을 보면 신경이 쓰인다. 꼭 언젠가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말이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어주고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바랬던 어린 나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쓰인다. 나처럼 억울하거나 서럽거나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좀 소외되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더 주는 편이다.

시윤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한 순간이라도 나로 인해 괜찮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참 기쁠 것 같다.


시윤이는 그 후에도 규림이와의 트러블-규림이가 새치기를 하고 자기 말을 무시했다고 했다. 규림이는 나를 만만하게 보고 무시하는 것 같아 쌓인 것이 많다고 했다.- 알림장 쓰는 문제 -알림장에 적은 리코더 연습하기를 제발 적지 말아달라고 했다. 엄마가 연습을 시키는 게 너무 괴롭다는 것이었다.- 또 사회 단원평가에서 4문제를 틀렸다고-이렇게 공부를 못하는 나는 쓸모가 없다-로 나에게 하소연도 하고 눈물도 글썽이곤 했다. 내가 화내지 않고 차분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니 "선생님, 나는 말할 사람이 없어요. 말할 친구도 없구요. 쌤 밖에 없어요. 쌤한테 맨날 말할 수 밖에 없어요." 하는 것이었다.

나는 언제든지 와서 말해도 된다고 말해 주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지! 게다가 마음에 위로가 된다면 더더욱!


'시윤아, 속상한 일이 있을 땐 언제든 와서 이야기 해도 돼. 선생님이 시윤이 이야기를 들어줘서 시윤이 마음이 풀어진다니 선생님도 너무 기쁘단다. 시윤아, 선생님도 어릴 때 경험이 있어서 이야기를 털어 놓을 사람이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잘 안단다. 선생님이 들어줄게. 시윤아, 그리고 네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하지 마. 시험 문제를 틀릴 수도 있고, 글씨를 조금 삐뚤어지게 쓸 수도 있어.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깐. 앞으로 세상을 살면서 시윤이가 너무 많이 좌절하고 쓰러질까봐 선생님은 걱정이 된단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주렴. 사실 이건 선생님도 참 안 되는 것이긴 해. 그래도 시윤이는 아직 어리니깐 선생님보단 변화의 가능성이 훨씬 많을 거야. 너는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시험 문제 그게 뭐라고. 좀 틀릴 수도 있지. 열심히 하면 그걸로 된거야. 유난히 눈빛이 반짝 빛나고 누구보다 감정에 솔직하고 그래서 여기저기 부딪히기도 하는 시윤이에게 선생님은 참 마음이 많이 간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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