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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레나 Nov 30. 2023

교실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해마다 학년말이 되면 아이들과 정이 들대로 들어 시간이 천천히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추운 날씨에 몸이 움츠러들어 아침에 집을 나서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학교에 오면 즐거운 마음이 드니 정말 다행이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세 가지 면에서 감동을 받았는데 내가 종례 시간에 이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했더니 몇 명 빼고는 제대로 듣지도 않고 언제 집에 가냐고 아우성이었다. 나의 감동 포인트를 아이들은 이해하지 못하나 보다. ^^;


첫 번째 감동은..


진서가 키우던 햄스터가 갑자기 죽어서 아침부터 눈물도 흘리고 하루종일 너무 슬퍼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또 눈물이 터져서 내가 위로를 해주고 있었는데 블록을 가지고 놀던 민석이가 다가오더니 다정한 말투로 "진서야, 토리는 지금 천국에 있을걸?" 하는 것이었다.

평소에는 장난꾸러기인데 다정하게 이름도 불러주면서 위로해 주려고 하는 말이 너무 예뻤다.

또 승운이가 다가오더니 주머니에서 마이쮸를 하나 꺼내 진서에게 내밀었다. 도서관 챌린지를 하고 받은 마이쮸인 것 같았는데 그중 하나를 위로의 뜻으로 주고 싶었나 보다.  

침울해 있던 진서는 바로 "고마워."하고 마이쮸를 받았다.

"진서야, 친구들이 이렇게 진서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나 봐."

하니 고개를 끄덕이며 괜찮은 표정을 짓는다. 


물론 그 뒤에 너무 슬프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었지만 말이다.


너무 거창한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교실에서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목격할 때 나는 '이런 게 아름다움이지!'라 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감동은..


급식을 먹을 때 나는 항상 밥을 아이들이 다 받고 앉은 다음에 밥을 받는데, 내가 밥을 떠서 자리에 앉으려고  가다가  내 자리에 휴지를 가져다 놓는 승헌이와 정환이를 발견했다. 

오늘 메뉴 중에 회오리 감자가 있었는데 나무 꼬챙이에 꽂아진 음식을 먹을 때는 손에 양념이나 기름이 묻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은 휴지에 끝부분을 싼 후 그 부분을 쥐고 먹곤 한다. 

자기들 휴지를 가져다 놓고 내 휴지도 따로 가져다 놓은 것이었다.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더니 웃으며 자리에 앉는 아이들이었다.

선생님도 손에 기름과 양념가루가 묻으면 안 되니깐 휴지를 가져다 드리려고 생각했다는 게 너무 기특하고 예뻤다.


이런 아이들의 배려 깊은 마음과 행동에 또 '이런 게 인간만이 가진 아름다움이지!'라고 느끼곤 한다.


세 번째 감동은 통합교과 수업시간, 세계 여러 나라의 민요에 맞춰 짝 율동을 하다가 느꼈다.

케냐의 민요 <안녕 반가워요>에 맞춰 짝율동을 배웠는데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니 아이들이 모두 신이 난 상태였다. 까불고 장난치고 한껏 업된 와중에 몇 커플이 너무 열심히 연습을 하길래 앞에 나와서 한 번 발표를 시켜 보았었다. 

성격 좋고 뭐든지 열심히 하는 도아와 도경이 팀의 차례!

어찌나 박자도 딱 맞고 흥겹게 율동을 잘하는지 내 몸이 자동으로 들썩들썩 대는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하나, 둘, 셋, 넷!' 구령도 맞춰가면서 마지막 동작까지 맞춰서 멋지게 율동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너무 신이 난 나는 마이쮸 상자를 열어 마이쮸를 선물로 하나씩 주었다. 

그러자, 여러 팀들이 눈빛을 반짝이며 손을 들고 나와서 해보겠다고 난리가 났다.

앞으로 나와서는 진지하게 마주 보고 서서 손을 허리에 올리고 율동을 시작하는 아이들. 

도아, 도경이 팀은 내가 '도도'라고 팀 이름도 지어 주었다.


뭔가에 집중하고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이게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지!'라는 생각이 든다.


고학년이 되면서 아이들이 변하기도 하지만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보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참 밝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순수하고 예쁜 마음을 간직하고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교사가 되길 잘한 것 같다. 

나는 어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참 어려운데 아이들과는 쉽게 친해지고 말도 잘 통하는 것 같다.

헤어스타일을 바꾸거나 계절이 바뀌어 옷장 속에 있던 옷을 꺼내 입고 가면  "선생님, 머리 했어요? 000 닮았어요." "선생님, 오늘따라 뭔가 예뻐 보이네요." "선생님은 예쁜 옷이 왜 이렇게 많아요?"라고 관심을 가져준다. 

"선생님, 20살이죠?" "선생님은 왜 이렇게 똑똑해요?" 이런 황당한 말도 진지한 표정으로 하니깐 어찌나 귀엽고 기분이 좋은지.

사랑한다. 예쁘다. 이런 말을 내가 어디서 들어볼까?

아이들이 내게 사랑을 보내준다는 느낌이 들고 이 사랑이 내게 큰 힘을 준다.


오늘도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배우고 아름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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