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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레나 Jan 20. 2024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장편소설 (스포가 있는 리뷰)


나는 외로움을 참 많이 타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사람을 그리워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혼자 있는 것이 더 편하고, 사람들과 있을 때도 외로움을 느끼는 편이다.


너무 외롭던 어느 날, 나는 #외로움 #외톨이를 넷플리스 목록에서 검색했다.

그러자 나타난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외로움을 느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를 찾아보면서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너무 여운이 오래 남아 한참 생각에 잠기기도 하다가 원작 소설을 주문했다.


일흔 가까운 나이에 첫 소설을 펴냈다니. 와, 얼마나 멋지고 대단하고 작가 지망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작가인가!

자연과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고, 스릴러이기도 한 독특한 소설에 나는 흠뻑 빠져들었다. 결말을 이미 알면서도 말이다.


#1

카야는 모든 가족이 떠나 버린 후로 습지의 판잣집에서 홀로 살아간다.

체이스의 말에 따르면 어른 남자 혼자서도 살지 못할 것 같은 낡고 어두운 판잣집에서, 습지로부터 얻은 음식들로 끼니를 때우면서 말이다. 소설 속에서, 시간을 건너뛰는 표현이 나올 때마다 나는 그 생략된 시간 동안 카야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카야는 오빠의 매트리스에 털썩 주저앉아 하루의 끝이 벽을 타고 스르르 미끄러지며 떨어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해가 저문 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빛이 머물다 방 안에 고였다. "


카야의 하루는 무섭게도 길었을 것 같다.


나도 때로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마주할 때면 '자연만이 나를 위로해 줄 수 있어.'라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카야에겐 습지가 어머니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다. 카야는 긴 하루동안 습지를 돌아다니며 갈매기에게 밥을 주고 새의 깃털과 둥지를 채집하고 습지의 생물들을 관찰하였다. 작가가 묘사한 습지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습하고 눅눅한 습지의 공기가 주위를 둘러싼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습지에 모기와 같은 해충이 얼마나 많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습지는 두렵고 위험하고, 또 소설 속 사람들의 생각처럼 매립하여 개발해야 할 곳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습지에 깊숙이 들어앉아 매일 마주한 카야에게 습지는 그 무엇보다 안전한 장소였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와닿는 부분이 이런 거였다. 자연으로부터 위로받고 자연 속에서 안전하게 성장하는 카야의 모습 말이다. 바다와 갈매기들, 팔매토 야자나무숲과 썩은 등걸, 이끼 깔린 푹신한 땅.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자연의 단어들이 너무나 포근하게 느껴졌다. 외롭고 상처받은 카야를 팔 벌려 맞이해 준 바다와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운 카야의 몸을 어루만져준 파도는 얼마나 부드럽고 인자한지!


물론 자연이 항상 자비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족을 공격하는 암컷 칠면조들이나 거짓 신호를 흘려 다른 종의 수컷을 유인한 후 잡아먹는 암컷 반딧불이, 수컷을 유혹한 뒤 머리부터 씹어먹는 암컷 사마귀까지.

생존과 번식의 본능에 충실한 자연은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생존을 위한 강한 본능은 생명체의 유전자에 새겨져 진화를 해왔다. 여기서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을까?

체이스에 대한 카야의 선택은 자연으로부터 배운 강한 생존 본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카야를 안전하게 품어준 습지에서 카야는 학습으로 사회화된 인간이 아니라 본능에 좀 더 충실한 인간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에는 야생의 생존본능이 각인되어 있어 궁지에 몰리거나 오랫동안 스트레스나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부적절한 행동을 하게 된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체이스의 경우에는 테이트와 대조적으로 발정 난 수사슴처럼 동물적인 본능에 더 충실한 인간이고, 테이트는 더 인간적이고 더 진화되고 더 예민한, 학습된 행동을 표상하는 진화된 인간이고 말이다.


외롭고 고립된 상황 속에서 자연으로부터 생존을 배운 카야가 어떤 모습으로 자라나는지가 내겐 굉장히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물론 7세 이전까지 어머니와 조디 오빠 등 가족과 함께 누린 경험도 카야의 성장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나중에는 기억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어머니와 조디 오빠에게 배운 습지에 대한 지식과 따뜻했던 부엌에 대한 추억, 그리고 어머니로 물려받은 그림 실력?


#2

이 소설이 특이한 것은 정말 다양한 장르와 다양한 키워드를 품고 있다는 것인데 그중에는 계급과 인종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점핑과 메이블은 부두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흑인 부부인데 그들도 사회로부터 차별과 멸시를 받으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카야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 점핑은 얼마나 우직하고 다정한 사람인지, 카야의 주변 인물로 간간이 등장하지만 나는 점핑이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에게 악함이 손톱만큼이라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묵묵하게 본인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주변에 온화하고 다정한, 이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테이트는 카야에게 깊은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나는 테이트가 이해가 가기도 했고 결국엔 카야의 동반자가 되어 준다. 테이트는 카야의 일평생 사랑이었고 마지막까지 카야와 함께 해주며 카야의 비밀을 습지와 바다에 묻어준다.


"테이트의 헌신으로 카야도 결국 인간의 사랑이 습지 생물들의 엽기적인 짝짓기 경쟁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지만, 삶은 또한 태고의 생존본능이 복잡하게 꼬인 인간의 유전자 어딘가에 여전히 바람직하지 못한 형태로 남아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


나는 카야의 언니, 오빠들이 폭력적인 아빠와 카야만 남겨두고 떠난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이것도 생존본능에 의한 것이었겠지) 나중에 조디 오빠가 돌아와 카야와 함께 어린 시절 추억을 나누고 남은 세월을 함께 보내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다.

삶은 결국 이런 것인가 보다. 매 순간 삶은 괴롭고 힘들지만, 인간들만 할 수 있는 함께 누리는 이런 따뜻한 순간들로 희석되고 결국 나중에는 아름답게 미화되고 마는 것 말이다.


나는 한 때 소설을 읽지 않았었다. 작가들의 문체가 너무 냉소적이고 따뜻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둡고 냉소적인 소설만 읽었었나 보다.)

그래서 수필을 주로 읽었었는데, 요즘 소설이 좋은 이유가 결말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에는 결말이 있어 삶의 과정에는 희, 노, 애, 락이 반드시 존재하며,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졌던 누군가의 삶도 돌이켜서 전체적으로 보면 숭고하고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3

아쉬웠던 점은 체이스의 죽음의 과정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었다는 것이었다.

카야가 왜 알리바이까지 만들어가며 한밤중에 그린빌에서 돌아와 체이스를 유인해서 소방망루에서 떠밀 수밖에 없었는지, 카야가 몰린 궁지가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서 의문점이 들었다.

물론 카야는 체이스가 올까 봐 계속 두려워하긴 했었지만 습지를 떠나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긴박하게 돌아올 만한 이유가 있었을까?

아니면 정말 이때다 싶어 습지를 떠나 있는 상황을 선택해서 치밀하게 계획한 걸까?

버스를 탈 때 변장한 모습 등은 조금 개연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체이스를 어떻게 유인할 수 있었는지도 말이다.

(체이스를 유인해 살해한 것은 암컷 반딧불이가 거짓 신호를 보내 수컷을 잡아먹는 모습과 흡사했다. 카야가 암컷 반딧불이로부터 배운 것.)


그리고 체이스가 왜 조개목걸이를 계속 걸고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체이스는 카야를 사랑했을까?

체이스는 폭력적인 카야의 아버지를 연상케 했으며 발정 난 수사슴, 암컷에게 구애하기 위해 겉멋을 잔뜩 내는 공작새 등의 수컷 동물들의 모습과 가까웠다. 호기심과 정복의 대상이었던 카야임이 분명했는데 조개 목걸이를 계속 걸고 있었다는 것은 체이스도 카야를 사랑했다고 생각하게 한다.



카야가 남긴 여운이 생각보다 오래간다.  낮은 자세로 숲에 숨어 앉아 잔뜩 긴장한 채로 촉각을 곤두세우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사슴 같은 카야의 모습과  안개 낀 습지에서 낡은 보트를 타고 유유히 표류하는 카야의 뒷모습이 어른거린다.


<작가의 말 중>

"살아오면서 저는 굳이 습지에 살지 않아도 외롭거나 고립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구가 많은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이 카야와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우리는 탄탄한 유대로 집단을 이루며 살도록 진화했지만 이제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길 잃은 느낌에 시달리고, 저 멀리, 혼자 있다는 느낌을 받지요. 반드시 집단을 찾아 소속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아울러 보듬어야 할 미아들이 많이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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