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아이가 방학 동안 주제 일기로 소원에 대해 쓴 것을 읽었다.
펜션 놀러 가기, 아령 사기, 게임 캐릭터 사기
나의 소원은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마음 가지기'이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다. 엄마가 평생 우울한 것을 보고 자랐고, 기질적으로도 그런 것 같다.
가면 속에 우울함을 감추고 살다가 시간이 지나면 주기적으로? 또는 비주기적으로 우울이 가면을 뚫고 나올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나는 내가 너무 울상을 하고 지낼까 봐 신경이 쓰인다. 사람들의 시선이.
우울한 것이 죄는 아닌데 내 우울한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줄 사람은 주위에 없는 것 같다.
자신만만해 보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이 내 우울을 비웃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만 같은 비이성적인(?) 생각에 한없이 움츠러든다.
그러고 보면 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힘들고, 대화가 편안하지 않고, 대화를 하고 나면 곱씹으며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지 걱정을 하곤 했는데 우연히 찾아본 '대인기피증'의 증상과 너무 유사했다.
'대인기피증'도 약을 먹어야 하는 질병이라고 했다.
나는 내 수줍음 많고 소심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늘 나를 자책했는데, 질병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니 잠시 마음이 놓이는 것은 왜일까.
학년이 바뀌는 2월은 늘 마음이 뒤숭숭하다.
환경이 변화는 것,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내게 굉장히 긴장되는 일인데 이게 과도한 불안까지 유발하고 있는 것 같다. 불안증인지, 대인기피증인지, 우울증인지. 그 모두인지.
최근에 누가 내게 언니는 참 평온하고 안정되어 보인다고 말했다.
나는 늘 폭풍 속에 있었는데 그렇게 보인다니 정말 의외였고, 내가 나를 정말 숨기고 살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숨기고 살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살아가면서 포기할 건 포기하고 적당한 감정은 숨기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지만
우울과 불안을 언제까지고 숨기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곪을 대로 곪아서 터지기 마련이니깐.
생각해 보면 최근 2년 동안, 학년 연구실에 갈 때마다 긴장이 됐었다.
연구실에 어떤 선생님이 계실까? 무슨 말을 할까?
편안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면 '대인기피증'이라고 했다.
소수의 그룹에서는 차라리 편안하다.
그런데 8~9명의 그룹에 가면 나는 긴장이 되고 무슨 말을 할지 자꾸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러운 대화를 할 수 없고, 듣기만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존재감이 없어지고, 친밀한 관계 형성은 어렵고 늘 불만족스러웠다.
또 나를 지나치게 낮추고 남에게 맞추는 화법과 행동.
어쩌면 상대방은 나의 계산된 말과 행동이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친절하고 친밀하게 말해주길 바라는 계획된 말과 행동들.
나는 친절과 애정을 지나치게 갈구하는 사람이다.
조금이라도 나에게 불친절한 사람을 만나면 불에 덴 듯 마음이 아프다.
모두가 나에게 친절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늘 웃으면서 친절하게 말하는데 상대방은 왜 내게 저런 반응을 돌려줄까?
이런 피해의식과 함께 마음이 아프다.
정신과에 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몇 번의 경험에서 의사들은 사무적으로 나를 대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정말 지극히도 당연한 건데 의사들의 나를 대하는 그런 태도에서도 상처를 받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약은 나를 졸리고 가라앉게 만들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정신과의 도움도 받지 않으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매일 불안과 긴장 상태로 겨우 웃음 지으며 살아야 할까?
오늘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리 반 여자 아이 2명을 만났다.
저 멀리서부터 "선생님~~~!!" 하면서 신나게 뛰어오는 아이들을 맞아주느라 웃었다.
"어디 가는 길이야?" 애써 활발한 척하는 목소리로.
집에 와 있으니 아들에게서 시끌벅적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저 지금 학원 마쳤어요. 이제 갈게요. 오늘도 반갑게 맞아줘야 해요. 오늘 저녁밥은 뭐예요?"
학원을 마치면 꼭 전화를 하는데 "알겠어. 오늘은 소고기야. 조심해서 와" 하며 웃었다.
내가 설거지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느라 도어록 누르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현관에 나가지 못할 때가 있는데 현관 앞에 나와서 두 팔 벌려서 반갑게 맞아달라고 늘 이야기하는 아들이다.
내가 이럴 때는 억지로 웃을 수밖에 없는데 내가 생각해도 내 표정과 말과 텐션은 부조화를 이루고 있을 것 같다. 우울과 불안이 덜한 시기(그런 시기도 분명히 있으니깐)가 빨리 돌아오길 바랄 수 밖에.
"언니,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게 참 두렵다. 대인기피증처럼 말이야."
"나는 그런 건 없다."
오늘 이런 대답을 들었다.
"아, 진짜? 어떤데? 내가 좀 도와줄까?"
라는 비현실적인 말을 듣지 못해 상처받는 내 모습이 또 싫다.
차라리 모두에게 나는 이런사람이다!! 하고 외치고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겠지만.
브런치에서 우울에 관한 글들을 많이 읽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위로가 됐다. 가슴 아프고, 울컥하고, 불안하고 긴장된, 그런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읽고, 쓰는 것으로 어느 정도는 해소가 된다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남편이 정말 내가 이번엔 힘들다고 느꼈는지 인내심을 가지고 나를 도와주고 있다.
아이들도 자라면서 이제는 나를 챙겨준다.
"엄마, 왜 기분이 안좋아보이노? 내한테 털어놔봐라." 라고 이야기를 하길래 깜짝 놀랐다.
우리 애들한테는 이런 분위기를 물려주기 싫은데...
그리고 이런 나를 좋아해주는 우리 반 아이들.
아이들은 나를 싫어하지 않고 좋아해 주니깐.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 주니깐.
그런 것들을 지푸라기 삼아 정신과 의사 선생님들이 말했던 가장 중요한 '내 의지와 노력'을 발휘해 보고 싶다..
그래도 내게는 사랑을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깐. 그리고 죽을 수는 없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