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도

기도가 이루어졌다

by Soo

초등학생 때 교회에서 처음 기도를 배웠다.

그 날 이후로 매일 밤 자기 전에 마음 속으로 기도를 했는데 오랫동안 기도의 형식은 대충 이랬다.


하나님, 오늘 하루도 잘 지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먼저 감사한 다음,

제가 오늘 잘못한 게 있으면 용서해주세요,라고 잘못을 고한다.

그리고 세 개의 소원을 말한다.


소원을 세 개만 말하라고 누가 가르쳐준 적은 없었지만

그 때까지 내가 본 동화책이나 만화에서 보통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나 소원을 이루어지는 존재들은 세 가지 정도의 소원을 들어주니까, 그냥 내 마음대로 양심껏 정한 갯수였던 것 같다.


어쨌든

세 개의 소원 중 제일 첫번째 소원은 아주 오랫동안 늘 같았다.


“우리 할머니,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주세요.”

(할머니를 먼저 말한 건 그냥 습관같은 것이었다. 더 좋아한 건 할아버지였으니까)


초등학생 때는 그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도했다.

중학생 쯤 되었을 때는 ’오래‘라는 단어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00살까지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바꾸었다. 100살 정도면 텔레비전에 나올만큼 장수했다고 볼 수 있고, 또 두 분이 백 세 정도 되면 내 나이가 마흔 정도니 두 분을 잃은 슬픔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어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고등학생이 되고 스무살이 넘어가면서 100살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또 기도를 바꿨다.


’내가 두 분의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까지 살게 해주세요.‘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낡은 카키색 패브릭 소파에 무기력하게 앉아 의미 없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생각했다.

할머니,할아버지가 오래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남아 있을 사람들의 욕심일 수 있겠구나 라고.

그 무렵 할아버지는 내가 여전히 20대 초반 대학생인 줄 아시고 늘 서울에 다시 언제 가냐고 물으셨다. 매번 내가 졸업했다고 말씀 드릴 때마다 매번 깜짝 놀라고, 손자손녀인 동엽이와 지민이를 당신 아들, 딸이라 착각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29살이던 2016년 여름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병세가 악화되어 입원 중이던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던 나도, 그리고 당신이 낳은 자식들 중 누구도 기억 못하는, 6.25 참전 중인 젊은 군인 시절로 돌아가있었고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이제 할아버지가 천국에 가셔서 편히 지내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할아버지의 모습은 내 눈에는 보이지 않고 할아버지 눈에만 보이는 나사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배에 미국놈이 있다는 말을 하는 젊은 군인의 얼굴이었는데, 이상하게도 난 그 얼굴이 행복해보였다.


그로부터 9년 뒤 2025년 봄에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다리를 쓰지 못한 채로 누워서 5년을 지내셨는데

지금 당신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당신 막내딸인지, 둘째 손녀인지 오락가락 하는 중에도

손녀딸이 기저귀 갈아드리겠다 하면 그게 미안해서 기저귀가 깨끗하다 거짓말을 하셨다.

방금 밥을 드시고 그릇을 갖다놓고 오면 금세식사하신 것을 잊으시고 밥 안 먹었다 하시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도 할머니는 “수야 밥먹어야지” 라며 손녀딸의 식사를 걱정하셨다.


나를 볼 때마다 ‘이뻐서 곧 시집가야겠다’ 하시던 할머니는 내가 시집도 가고 애도 낳았는데, 그 사실을 모르시고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기억창고에는 새로운 기억이 저장될 공간이 없을만큼 기억이 꽉 찼기 때문이겠지.


마지막으로 송장처럼 누워만 계시는 할머니를 보고 온 5월 초 이후부터 나는 할머니가 천국에 가시를 기도했다. 곡기를 끊으셨다는 연락을 받고 할머니가 이제는 가시겠구나, 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요양병원으로 옮기셨다는 연락을 받은 날 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이제는 우리 할머니를 데려가주시기를, 그래서 천국에서 편안하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나의 오랜 기도가, 모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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