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공개는 신의 한 수?
<승리호>의 넷플릭스 공개는 득이었을까 실이었을까
지난 2월 5일 <승리호>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었다.
이 공개를 두고 참 말들이 많았다.
‘작년 한국 영화 최고의 기대작’, ‘최대 제작비 240억’, ‘한국영화 최초 우주 SF 영화’, ‘송중기, 김태리, 유해진, 진선규 호화 캐스팅’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영화관 개봉이 힘들어지자 넷플릭스로 공개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움을 전하는 뉴스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승리호>의 넷플릭스 공개는 과연 안타까운 상황인가, 과연 실이었나? 득은 아니었을까...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을 정리하고 그에 답해보련다.
1. 송중기를 울려야만 했을까
영화가 담고 있는 세계관이 영화 ‘엘리시움’에서 본 듯하다는 것은 차치하자.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에서 그 정도의 겹침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아무래도 이런 류의 영화 스토리는 디스토피아로 흐를 수밖에 없고, 세계관과 영화 속 설정은 엘리시움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뻔한 설정에 감독의 가치관과 이야기가 실려 그만의 영화가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만의 영화를 굳이 한국형 신파로 풀어야 했을지, 그래서 많이 아쉽다.
영화는 인간의 가치가 계급으로 측정되는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그 세상에서 선택받은 자였다가 밑바닥 인생으로 떨어진 인물이 2시간 동안 끌고 가는 감정이 단지 신파 하나라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했다.
감독이 만든 세계관과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주인공의 감정에 실어 그의 변화를 스토리의 한 축으로 나타냈으면 어땠을까.
2. 김태리, 이리 낭비해도 되나
김태리 배우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이다. 말 그대로 내가 믿고 보는 배우란 말이다.
김태리는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잘 소화해 낸다. 그 점이 이 배우를 가치 있게 만들어 준다.
‘아가씨’ ‘1987’ ‘리틀 포레스트’ 그리고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까지, 김태리는 그가 맡은 캐릭터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번 <승리호>에서는 김태리의 ‘장 선장’을 보지 못한 느낌이다.
영화에는 김태리가 충분히 캐릭터를 표현할 시간과 사건이 없다.
그저 ‘장 선장’은 예고편에서 그가 외치는 대사 한마디, ‘비켜라, 이 무능한 것들아.’로 설명이 끝나는 캐릭터다.
그럴 거면 굳이 김태리라는 배우를 섭외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냥 그 자체로 카리스마가 있는 배우를 써야지, 캐릭터를 영화 내내 잘근잘근 씹어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김태리의 재능을 이리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캐릭터에 대한 고민이 없어 보이는 건 비단 ‘장 선장’ 캐릭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영화에 빠지지 않는 ‘마음 따뜻한 조폭’과 강약 조절 없이 계속 개그를 하는 ‘감초’ 캐릭터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승리호>는 장르물이다. 어쩜 스토리보다는 캐릭터로 승부를 걸었어도 충분했을 영화다. 하지만 캐릭터가 너무 밋밋하다. 영화를 봤지만 생각나는 캐릭터가 없으니 어쩌면 좋은가.
3. 스페이스 오페라판 7번 방의 선물?
스토리 콘셉트가 7번 방의 선물이랑 비슷해 보인다.
설정이나 분위기, 스토리는 다르지만 그 콘셉트 관점에서만 보면 말이다.
주인공들은 우주 쓰레기 처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생계형 노동자들이다. 쓰레기를 수집하는 데에도 인정사정 보지 않고 남의 것을 가로채고, 다른 우주 쓰레기 처리반을 ‘무능한 것’들로 치부하며 ‘유능하게’ 늘 실적이 좋은, 말 그대로 <승리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일을 하는 데도 빚만 늘어가고 늘 돈이 궁하다. 일상을 버티며 돈만 생각하는 찌질한 인물들이다.
이런 이들이 갑자기 따뜻해진다. 그리고 삶의 목표가 생계형에서 갑자기 전인류애로 바뀐다.
물론 이 정도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그 정도의 목표로 이어지는 건 어쩜 당연한 플롯이다. 하지만 그 변화에 대한 설명이 없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없다.
그들이 변하게 된 계기는 ‘아이 하나’ 때문인데 아이와 교감을 하는 장면이나 그들이 아이에 마음을 여는 과정이 그려지지 않는다. 아이를 구하려는 그들의 사명감이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갑자기 착해진다.
흉악범들이 갑자기 인간적으로 변해 류승룡과 그의 딸을 만나게 해주는 7번 방의 선물이 생각나는 건 나뿐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초니까 잘했다는 말
영화가 공개되고 호평과 혹평이 같이 나오고 있다.
나는 쓰다 보니 너무 혹평만 했다. 괜히 이 글을 올려도 될지 소심해진다.
우리나라 최초 우주 SF물인데 이 정도면 잘한 거다, CG와 영상미가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엄청난 발전이 보이는 영화다, 이런 칭찬 일색의 평가도 많이 보인다.
그래, 나도 이 부분은 인정한다.
하지만 최초니까 이 정도면 됐다는 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누군가의 졸업작품이 아니라 전 세계에 개봉이 되는 상업 영화인데 이만하면 괜찮다는 건 어느 기준의 평가인지 모르겠다.
CG가 훌륭하고 스토리가 엉망인 영화 볼래, CG가 엉망이고 스토리가 훌륭한 영화 볼래,라고 묻는다면 나는 ‘잘래’ 하겠다.
처음 던진 질문, <승리호>가 넷플리스에서 공개된 건 득이었을까, 실이었을까.
그 대답은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난 어쨌든 넷플릭스에 있어서 봤다는 것, 이것으로 내 대답을 대신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