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능력 그리고 사회의 편견
넷플릭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한 문화권의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영화와 미드에만 국한되었던 선택의 폭이 넓어진 느낌이다. 넷플릭스에 처음 입문한 계기도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이었다.
이번에는 이탈리아 영화다. 생각해보니 이탈리아어로 된 영상매체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연한 계기로 이번에 <중력을 거스르는 남자>를 보게 되었다. 스페인어를 들으며 ‘프로페소르’에게 빠졌던 종이의 집만큼이나 이번 영화에서 나오는 이탈리아어도 매력 있게 다가온다.
<중력을 거스르는 남자>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판타지라기보다는 드라마 장르에 가까운 영화이다. 영화는 중력을 거스르는 남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의 능력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그의 인생 이야기에 초점을 둔다. 그가 평범한 일상을 찾아가는 한 편의 성장기라 할 수 있겠다. 다소 뻔한 플롯일 수 있지만 이 뻔한 이야기를 ‘중력을 거스르는 능력’으로 풀어 간 점은 이 영화를 뻔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천사의 선물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다른 이들이 가지지 못한 중력을 거스르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오스카르.
엄마의 말대로 천사일까.
그런 희망이 무색하게 이후 오스카르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철저히 집에서만 생활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아이가 위험해질 거라는 할머니의 걱정 때문이었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남들과 다르기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오스카르. 결국 집에서 창밖으로 바깥세상을 구경하고 티브이에서 배트맨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다. 오스카르가 학교 갈 나이가 되어도 학교에 보내지 않자 주민의 신고로 경찰이 집에 찾아오게 되고 오스카르와 가족들은 산속 외딴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된다.
평범하게 남들처럼 살고 싶었던 바람
어른이 된 오스카르는 늘 답답하다.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숨어 지내야 하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무거운 배낭을 메지 않고는 몸이 둥둥 떠 어디도 갈 수 없다.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벗어나고 싶다.
그러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가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로 결심하고 집을 나서고, 오스카르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다. 전 세계를 돌며 쇼에 나가고, 인터뷰를 하며 이전 생활과 전혀 다른 삶을 이어간다.
오스카르는 점점 유명해지지만 이내 자신은 사람들의 욕망에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스카르는 남들처럼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싶었던 작은 바람이 있었지만 세상은 오스카르가 생각하듯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결국 회의감에 빠진 오스카르는 생방송에서 방송사고를 내고 더 이상 쇼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오스카르는 자신이 원하는 평범한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남들과 다른 능력, 누리기 전 일단 넘어야 할 사회의 편견
얼마 전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시를 낭독한 사람은 다름 아닌 ‘여성 흑인 청년’ 계관 시인, 어맨다 고먼이었다. 말 그대로 성별, 인종, 나이의 편견을 뛰어넘은 한 장면이었다. 이 스토리가 아름답게 보이는 건 어찌 보면 우리 사회에 깊은 편견이 굳건히 존재하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남들과 다른 것을 ‘비정상’으로 바라보는 편견에 늘 노출이 되어있다.
오스카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한 개인이었지만 사람들의 편견에 막혀 사회에서 고립된 채 살아간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것으로 잘못 표출이 되기도 한다. 결국 오스카르는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장 자기 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는 남들과 다를 때 개인이 겪는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들려준다. 주인공의 삶은 <중력을 거스르는 남자>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판타지의 흥미로운 인생이 아니었다. 영화 속에 흐르는 우울함은 편견을 마주하는 개인이 어떤 기분일지 말해주는 듯하다. 주인공이 찾은 미소와 해피엔딩을 보고도 영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것은 어쨌든 우리 사회는 편견이 있고, 그 편견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편견의 해피엔딩이 신문 속 기사거리가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