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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Jun 01. 2021

나도 쿨하게 딩크라 말하고 싶다

아이는 아직 계획이... 하지만 딩크는 아니에요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기보다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남편과 내가 아이를 낳는 문제로 서로 생각이 다를 줄은 몰랐다.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다.


결혼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고, 아이를 잘 키울 거고, 그러려면 언제 육아휴직을 써야 할지 그런 계획만 막연히 떠올리며 남편과 손을 잡았다.


둘이 함께 하는 삶은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계획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게 인생이라지만 결혼 후의 삶은 더 그랬다.


이제는 나와 똑같은 인격체인 남편이라는 존재가 늘 옆에 있으니 말이다.


서로 배려하며 어느 정도 그와 나의 겹쳐버린 인생을 함께 살아야 한다.


그 바람에 나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딩크의 삶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언제부턴가 미디어에 나오는 딩크족의 이야기를 찾기 시작했다.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기보다는 그들이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확신이 없었고 불안했고, 그리고 자신이 없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말이다.



저는 30대 초반에 이미 결정을 내렸어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요.



당당하게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고 말하는 그들.


나에게 없는 어떤 자신감이 느껴졌다.


어떤 향기가 날까 코를 갖다 대자 생각지 못한 아린 향기에 나도 모르게 콧등을 찡그리게 만드는, 마치 그런 쿨함 같았다.


그들은 적어도 자신의 선택에 후회를 하지 않는 듯 보였다.


저는 30대 초반에 이미 결정을 내렸어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요. 그러면 내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냥 살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중략)
저는 그냥 인간이라는 것은 우주의 한 점 먼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휴머니즘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죠. 인간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세계도 바꿀 수 있고, 그밖에 어떤 의미 있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는 반면, 저는 그 반대에 있어요.

<출처 : 글쓰기의 최소원칙 중 작가 김영하의 말>


젊은 사람 말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그러면서도 스스로 원해서 딩크의 삶을 선택한 사람 중 한 사람이 김영하 작가다.


나는 위 글귀를 읽으면서 김영하 작가야말로 ‘딩크의 쿨함’ 그 자체라 생각했다.


흐트러짐 없는 그의 생각과 그가 선택한 단어는 너무 쿨해서 멋을 넘어 반감까지 생길 정도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김영하 작가의 이야기 속 허무주의는 나와 같은 성향이다.


나 역시 우주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그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을 보곤 했다.


시간은 결국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허무주의 속에서 김영하 작가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결정도 내린다.


반대로 나는 삶이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본능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죽음이라는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 늘 떨었고, 허무함에 상처를 받았다.


20대가 되자 왜 살아야 하는지 답을 찾으려 했고 여전히 그 답을 찾고 있지만 그 과정에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안에 영원히 살고 싶은 집착과 욕망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글을 남기고 나를 남기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자손 번영이라는 자연계의 이치에 빠져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생각 다른 결론, 재미있는 상황이다.



나도 쿨해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약하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하는 일은 내 기준에서는 힘든 일이다.


쿨하게 결정하고 쿨하게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내 남편은 아이를 낳는 것에 부정적이지만 또 그렇다고 쿨하지는 못한 사람이다.


딱 한 가지, 부모님에서 말이다.


“누님네 아이가 두 명이나 있는데 뭘 그래? 손자 두 명이면 충분하지.”


이리 말을 해놓고 뜬금없다 생각했다.

스스로도 쿨하지 못하면서 남편이 좀 더 쿨해졌으면 하는 어이없는 바람은 또 뭐람.


친구들과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먼저 고르는 법이 없고, 처음 방문한 낯선 동네에선 후회가 싫어 ‘아무 집’ 말고 맛집을 검색한다.

늘 그렇게 우유부단했고 후회를 두려워했다.


내 앞에 놓인 ‘아이’라는 선택 앞에서 나보다는 남편이 기준을 정하길 바라고, 그 기준과 나 사이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하려 발버둥을 친다.

여전히 우유부단하고 후회를 두려워한다.


나는 지금 ‘남들이 보기에’ 딩크의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내가 딩크라고 하지 못하는 ‘어쩌다 딩크의’ 삶을 살고 있다.


처음 가졌던 생각과 달리 아이 없는 삶도 내 미래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만 오늘도 고민하고 주저한다.

차라리 쿨하게 딩크라고, 아니면 쿨하게 딩크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도 누가 물으면 어정쩡하게 대답하겠지.


“아이는 아직 계획이... 하지만 딩크는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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