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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Jun 08. 2021

아이가 있는 삶과 아이가 없는 삶, 결국은 선택의 문제

선택은 아쉬움은 남길지라도 후회는 남기지 않는다

그라나다 대신 론다?
여행에서의 선택



남편과 같이 갔던 여행지 중 스페인은 우리 둘에게 무척이나 기억에 남은 곳이다.


그곳의 공기와 햇살이 내 볼살을 스치고 지나가면 친절한 사람들이 내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는 기분 좋은 여행지였다.


우리는 바르셀로나로 들어가 마드리드로 나오는 비행기를 끊고는 열흘 가까이 되는 시간, 어떤 경로로 갈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 스페인 자유여행의 일반적인 루트가 있었는데,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에서 시작해서 스페인 남부 쪽 도시를 거쳐서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로 올라가는 일정이었다.


그중 남부 도시의 거점이 되는 도시는 세비야와 그라나다였다.


두 곳 모두 한국인에게 유명한 관광지이다.


그러다 당시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해진 ‘론다’라는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그전까지는 유명하지 않아 블로그 등에 정보가 한정적이었다.


그나마 정보에 의하면 론다는 자연 협곡에 놓인 어마어마한 ‘누에보 다리’가 유일한 볼거리인 도시였다.


론다를 가자면 세비야나 그라나다 중 한 곳은 포기해야 했다.


‘반드시 가봐야 할 여행지’라는 세비야와 그라나다, ‘누에보 다리’가 유명한 작은 도시 론다.


어디를 가고, 어디를 포기해야 할까. 여행이라는 한정된 시간에서 선택은 늘 힘들다.




아직도 남편이 아이 낳는 것에 회의적이야?



내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 내 안부를 물으며 묻곤 한다.

“아직도 남편이 아이 낳는 것에 회의적이야?”


그들은 내가 결혼을 하고 아직 아이가 없는 것이 남편의 의지라고 어느 정도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라도 아이를 언제 낳을 것이냐는 질문은 늘 어렵고 불편한 이야기다.


긍정이나 부정으로 단답형으로 끝낼 문제가 아닐뿐더러 내 속사정을 길게 이야기하자니 아이가 있는 상대방은 공감조차 못하는 다소 지루하고 뻔한 이야기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애초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잘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언제부턴가 “남편이 아이 생각이 없네요.”라고 짧게 대답을 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이 어려운 문제를 단답 하지 않고, 그렇다고 장황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않고도 상대방과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후속적인 이야기가 몇 마디 오가지만 내가 아닌 ‘남편’의 생각을 굳이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 상대방 말에 그저 맞장구를 치다 보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된다.


“그러니까요. 그 사람 나이에 비해 참 젊지요?” 라거나 또는,

“그러니까요. 왜 그렇게 아이 낳는 걸 부담스러워하는지 모르겠네요.” 라거나 또는,

“그러니까요. 이러다 제 나이만 먹는 거 아닌지 몰라요.” 등등.


이 대화에서 내 대답에는 내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의 생각이라고 대충 얼버부리고 달아나버린다.


내 가족계획에 대한 대화가 난감해지기 시작하는 건 내 생각을 물을 때이다.


남편 생각은 그렇다 치고 그럼 당신 생각은 어떠냐는 질문에 나는 늘 어버버 하며 똑 부러진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남편을 설득하는 중이에요.”

이 깔끔하고 명확한 대답은 결혼 초, 그리고 그 후 몇 년간 힘주어 말하던 나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내 대답에서 내가 사라졌다. 내 생각이 뭔지 스스로도 혼란스럽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아이 없는 삶이 익숙해지면서 아이가 있는 삶에 대한 확신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나의 삶도 안정이고 친구의 삶도 안정이었다
우리의 인생은 포기가 아닌 선택이다



결혼 7년 차, 우리는 아이가 없이 저녁에 여유로웠고, 개인 일정에 제한이 없었으며, 매년 여행을 다니고 매주 데이트를 즐겼다. 신혼이니까 둘에게 집중하기로 했던 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점점 익숙해졌다.


내 주말 이야기, 내 여행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아이가 없으니까 가능한 이야기”라며 “그때를 많이 즐기라”는 소리를 많이 했다.


그 이야기를 하도 들어 귀에 딱지가 앉은 어느 날, 아이 없는 나의 삶과 아이 있는 친구의 삶을 조금씩 비교해 보기로 했다.


과연 나의 삶은 안정이었고, 친구의 삶은 혼동이었다.

과연 나의 삶은 배우자였고, 친구의 삶은 가족이었다.

과연 나의 삶은 개인이었고, 친구의 삶은 이타로도 설명이 안 될 희생이었다.

과연 나의 삶은 여유였고, 친구의 삶은 사랑이었다.

과연 나의 삶은 불안이었고, 친구의 삶은 안정이었다.


돌고 돌고 또 돌아 나의 삶과 친구의 삶은 어쨌든 안정이었다. 서로 발생의 근원은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심리적 기반을 가진 같으면서도 너무 다른 두 ‘안정’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평범하게 ‘친구의 안정’을 원했지만 어느새 내 몸은 ‘나의 안정’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까지 흔들리고 있다.


남편은 아이가 없는 삶을 원하고 나는 처음 가졌던 생각과 현재의 삶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아이를 낳으려는 자와 낳지 않으려는 자가 만나니 그 중간의 선택지가 없다.


한쪽이 자신의 생각을 포기해야 결론이 나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포기하는 결론을 바라지 않는다.


만약 ‘포기라’는 단어가 머리에 남는다면, 언젠가 그 단어는 자기도 모르게 곪아 ‘후회’라는 단어로 변해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인생은 여행처럼 늘 선택이 주어진다.




아이 없는 삶과 아이 있는 삶
결국은 선택의 문제
아쉬움은 있더라도 후회는 남기지 않게



우리는 론다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라나다를 여행지에서 지웠다.


어쩔 수 없는 포기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여행지를 선택한 것이었다.


자연 협곡에 놓인 누에보 다리만 봐도 충분하다 생각했던 우리 앞에, 날 것 그대로의 평야와 넓은 목초지에서 느낀 뜨거운 햇살의 기억이 날 아직도 설레게 한다.


우리는 그라나다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론다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러자 비로소 느꼈던 그곳의 아름다움이었다.


아이를 낳는 문제를 두고도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처음에는 짜증이 나고 머리가 아팠지만 지금은 생각한다. 나에게 선택의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고 말이다.


론다를 선택했어도 그라나다에 못 간 것은 아쉽듯이 선택은 늘 깔끔한 기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후회가 없는 선택을 하고 싶다. 아쉬움은 있더라도 후회는 없게 말이다.


아이가 있는 삶과 아이가 없는 삶.

‘후회를 남기는 포기’가 아니라 ‘아쉬움을 감내하는 선택’이 되도록 차분히 생각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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