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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Jun 15. 2021

딩크의 주말이 궁금해? 딱 한 번 말해줄게

우리는 제각각으로 행복하다

딩크족?
주말에 뭐하세요?



지난여름 협력업체와 식사를 하는 시간 있었던 일이다.


“결혼을 하셨는데 아이가 없으세요? 그럼 주말에는 뭐하세요?”


업무 시간에 비해 좀 캐주얼한 분위기였지만 그렇다고 서로의 사생활을 묻는 자리는 아니었다.


협력업체 관계자였던 그는 테이블에서 오가던 가벼운 대화에 취했는지 나의 개인사에까지 관심을 보였다.


살짝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정색할 필요는 없어 보여서 대충 몇 마디를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주말에요? 뭐 이것저것 하죠.”


이후 대화는 다른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흘러갔지만, 눈치가 없는 건지 무례한 건지 이 사람, 그냥 넘어갈 기세가 아니었다.


“아니, 가만있어봐. 그러니까 주말에 뭐하시는데요?”


따지는 듯한 말투, 그리고 집요했다.


살짝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사생활이 대화의 주제가 되는 건
최소한 공감의 자세가 있을 때이다



나는 그의 질문을 이해한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고, 관찰 예능프로그램을 열심히 챙겨보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하지도 않은 상대의 사생활을 묻는 태도는 이해받지 못할 무례한 행동이다.


우리는 친한 친구를 만났을 때 서로 묻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는 이야기를 한다.


며칠 전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가 이상형이 아니었는데 꾸준히 연락을 하고 있다는 어정쩡한 썸 타는 이야기.

결혼하고 맞벌이를 하다 보니 퇴근 후 밥 차리고, 치우고, 자기 바쁘다는 현실 결혼 이야기.

직장에서 상사가 하필 꼰대라서 매일 출근길, 그놈을 어떻게 골려줄까 상상한다는 직장 이야기.

아내 또는 남편에게 약속이 있다고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맡기고 나와 잠시 해방감에 그저 웃고 있는 육아 이야기.


등등


친한 친구와의 대화는 시시콜콜하고 하찮은 이야기이지만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이다.


내가 웃으면 그대로 웃고, 내가 울면 그대로 울 수 있는 상대에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공감'이라는 감정은 그와의 관계, 그와 함께한 시간, 그와 공유한 감정들을 따져야 가능한 복잡한 감정이다.


공감 위에 놓였을 때 우리는 서로의 사생활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면 공감이라는 감정이 없이 나의 사생활을 침범하는 많은 시선에 노출이 되고 만다.




친구의 공감이 아닌
익명의 호기심에 노출되는 현실



협력업체와의 식사자리에는 공감 대신 호기심만 있었다.


그는 그 호기심을 품고 나에게서 무슨 대답을 원했던 것일까.


나의 주말이 궁금해 단순히 안부를 묻는 질문이었다면 기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안부에 응하듯 뻔한 대답을 하고 넘어가려는데 그는 재차 물었다.


“그래서 주말에 뭐하시는데요?”


그쯤 되자 그 질문에서 느껴지는 건 호기심을 넘는 적대감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혹시 예민한 걸까 싶어 몇 번을 생각했지만 그의 행동은 도를 넘는 행동임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자신의 주말 이야기를 업무로 만난 사람과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묻지도 않지만 만약 대답해야 할 경우 자세하게 대답하지 않는다.


재차 내 주말에 대해 묻는 그의 질문 받고서야 느꼈다.

질문 내용은 내 주말이었지만, 말투는 ‘아이 없는 부부'의 삶을 인정하기 싫은 문제제기라는 것을 말이다.

그의 말투는 내 삶의 방식을 못마땅해 하는 투였다.


어쩌면 그는 우리 사회가 바라보는 딩크족에 대한 시선을 대표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이 없이 산다고? 그러면 왜 결혼했어?

아이 없이 산다고? 둘이 외로울 텐데…

아이 없이 산다고? 동거이지 그게 결혼이야?

아이 없이 산다고? 우리 사회 저출산이 심각한데…

아이 없이 산다고? 혹시… 병원은 가보셨어요?

아이 없이 산다고? 철없다, 철없어.


“아이가 없으세요? 그러면 주말에 뭐하세요?”

“그러니까, 주말에 뭐하시는데요?”


그의 질문에는 어떤 시선이 담겨있었던 것일까.




내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못하는 이유
적대감이 공격으로 변할 테니까



내 주말이 그렇게 궁금하다면 딱 한 번만 말해주겠다.


지난 주말, 아침에 좀 부지런하게 일찍 일어났다.

남편과 아침 조깅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레깅스와 스포츠브라를 갖춰 입고 조깅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주말 아침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고, 해는 뜨거워지고 있었지만 바람은 여전히 시원해 뛰기 그리 나쁘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집 근처에 마침 조깅하기 좋은 큰 강이 있다.

애플워치로 운동 어플을 켜고 음악도 랜덤 재생을 한 채로 30분 달리기 시작했다.


땀이 얼굴에 송골송골 맺히고 얼굴이 열에 붉어져 당장 샤워를 하고 싶었지만 주말 아침에 느끼는 흔치 않은 이 성취감을 더 느끼고 싶었다.

우리는 집으로 바로 가지 않고 집 앞 단골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주중 바쁘게 지내느라 얼굴을 많이 마주하지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우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몸을 기울인 채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주말 아침 대화는 정치, 경제, 사회, 연예, 스포츠 등등 생각나는 대로 마구 넘나 든다.

이번엔 그날 새벽에 있었던 덴마크 축구 선수의 심정지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인생무상과 운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다.

생과 죽음이 멀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 더 행복하자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손까지 마주 잡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눈은 바라봤다.



허세로 보일까, 과시로 보일까 친구에게 조차 말한적 없는 나의 주말 풍경이다.


그는 정녕 나의 이런 이야기가 궁금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이 생각하는 ‘아이 없는 부부’의 삶을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고 있다 보니 나는 가끔 사람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고, 더 나아가 적대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회의 시선으로 볼 때, 왠지 아이 없는 부부는 행복하면 안 될 것 같다.


행복은 부부와 그 옆에 자리한 두 자녀가 환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에서나 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뜻하지 않게 딩크로 살아보니 나 역시도 가지고 있었던 어떤 ‘고정관념’에 스스로가 노출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는 한다.


나에게 결혼 생활이 건조한 적막감이 감돌고 우울할 거라는 생각으로 말을 거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럴 때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당황스럽다.


난 그저 아이가 없이 살고 있을 뿐이지, 아이가 없는 것이 행복의 근원도 불행의 근원도 되지 않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라볼 수밖에, 나에게 애정을 가지고 공감할 자세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굳이 나의 이야기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괜히 그 단순한 호기심이 적대감으로, 공격으로 돌아올 거라는 내 직감을 믿기 때문이다.

경험도 있고 말이다.




모든 행복한 가정도 제각각으로 행복하다



우리의 삶은 모두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있고 누군가에게는 없는 것이 있다.


그게 뭐가 되었든, 있고 없기에 무조건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단정 짓지 않는다.


하지만 유독 아이만큼은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것에 드는 희생은 그 행복에 가려져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아름답게 포장이 된다.


아이가 있어도 행복한 순간이 있고 지옥의 순간이 있듯이, 아이가 없어도 행복한 순간이 있고 지옥의 순간이 있다.


아이의 존재는 행복과 불행을 나눌 수 있는 이분법적인 조건이 아니다.

인생은 그보다 더 복잡하다.


아이가 있다면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있다면 덜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현재 나의 삶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고, 하나의 기준만으로 행복을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톨스토이는 <안나 까레니나>에서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다.

우리 역시 제각각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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