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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Jun 22. 2021

‘누구나’ 말하지만 ‘누구도’ 키워주지 않는다

지정생존자, 그 극한에서도 자상한 아빠라는 신화

선택을 앞두고 생각하지 말아야 할 조건, 그 첫 번째 이야기


나는 어쩌다 딩크로 살면서 의도치 않게 아이를 두고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선택은 늘 어렵다.
복잡하고 늘 제자리다.

좀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우선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별하는 게 먼저라 생각했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집착하고 엉뚱한 선택을 하지 않게 말이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이야기, 생각하지 말아야 할 조건 하나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바로, ‘행복한 가족’ 신화이다.



성공한 인생 필수 조건, 행복한 가족



주말에 할 일 없이 넷플릭스를 보는 게 요즘 낙이라면 낙이다.


요즘처럼 덥고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때면 집에서 하루 종일 미드 하나를 골라 한 시즌을 끝내버리는 재미가 솔솔 하다.


최근에는 본 드라마는 ‘지정생존자 시즌1’이었다.


‘지정생존자’ 드라마는 우리나라에서도 리메이크가 되어 어느 정도 유명한 드라마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톰 커크먼. 그는 연두교서가 있던 날 지정생존자로 자리를 지킨다. 그러다 국회의사당의 테러로 행정부와 국회 인사들이 모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급박한 상황 속에서 미국 대통령직을 승계받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하루하루는 결코 쉽지 않다. 하나가 끝나면 다른 하나가 돌발하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 속 극한직업, 바로 미국 대통령을 수행 중이기 때문이다.


다소 정치적인 이야기가 지루하게도 느껴지지만 범인을 잡아가는 부분이 스릴러에 가까워 흥미 있게 지켜보았다. 극한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톰 커크먼의 인성에 반하고 저런 정치인 주변에 없나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능력보다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바로 그가 아이들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아빠’라는 점이었다.


아마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대통령으로서 행정을 풀어가고, 테러를 일으킨 범인을 잡는 과정만 나왔다면 이 드라마는 평범한 정치 스릴러에 머물렀을 것이다.


최고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 직을 수행하면서도 언제나 가족을 생각하고, 아내와 두 자녀를 사랑하는 톰 커크먼의 인간적인 모습은 그의 인기와 함께 드라마의 인기도 올리는 중요한 요소였다.


나 역시 세상 스위트 한 남편과 아빠인 그를 곁에 둔 그의 아내와 그의 아이들이 너무나 부러웠으니까.




아이를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만들어 버리는 ‘행복한 가족’ 신화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행복한 가족을 떠올릴 때 좋은 집 앞에 차가 주차되어있고, 그 앞에 아내의 어깨를 감싼 자상한 남편과 양옆으로 두 자녀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미국 대통령 직을 수행하는 이의 성공과 행복은 직무실에서 카리스마 있게 일하는 모습보다는 가족과 평범하게 캐치볼을 하는 일상으로 보여진다.


아무리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도 그 역시 한 가족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그에게서 인간미를 느끼게 하고 그의 인기까지 올리는 요소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트럼프 도널드 전 대통령의 상반된 이미지와 그들의 가족 이미지를 소비하는 미디어의 대조된 모습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행복한 인생이란 직업적인 성공과 좋은 집과 차는 기본이고, 거기에 가족이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혹시 영화 속에서 이런 캐릭터 많이 보지 않았나?

꽤 성공한 커리어를 가진 반면에 이혼을 해서 한 달에 한번 아이를 만나는 주인공!


아무리 능력 있고 좋은 직장을 다니는 성공한 인생도 가족이 없거나 이혼을 한 상황이면 괜히 루저 인생으로 보이게 만든다.


미디어의 힘, 대중의 고정관념은 생각 외로 뿌리가 깊다.


이런 사회적인 관념은 아이를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누구나 아이를 낳으라 말하지만
누구도 내 아이를 키워주지 않는다



행복할 것이다. 그래, 행복하다.


좋은 직업이 있고 거기서 따라오는 경제적인 여유와 그것을 함께 누릴 가족이 있다면 누가 봐도 행복하다.


물론, 부부 관계는 이혼하지 않을 정도로 좋아야 하고, 자녀들은 부모를 의지하고 잘 따르는 아이들이어야겠지만.


하지만 이 조건들은 행복의 충분 조건은 될 수 있어도 필수 조건은 될 수 없다.


인생에 어떤 조건이 있고 충족하기 위한 기준이 있다면 인생은 쉬워 보인다.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만 하면 되니까 말이다.


남들이 행복하다니까, 행복해 보이니까 그 행복의 근원이 뭔지 따지기도 전에 일단 좋은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되니까 말이다.


어쩌면 이 ‘필수 조건’이라는 건 우리 사회가 만들고 사람들의 암묵적인 긍정에 탄생한 하나의 ‘신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런 ‘행복한 가족’ 신화는 우리를 버겁게 하기도 한다.


난 이미 버겁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남들 다 하는’ 결혼을 하라 해도 그랬고, 이제는 ‘남들 다 하는’ 육아를 하라 해서 그렇다.


아이와 함께할 때 진정한 행복을 맛볼 것이라는 말, 아이는 무조건 낳아야 한다는 말, 부부 둘만 살면 뭐하냐는 말, 저출산이 우리 사회 문제라는 말.


누구나 아이를 낳으라 말하지만 누구도 내 아이를 키워주지 않는다.


사회는 아이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말하지만 어떤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이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이다.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나야말로 ‘행복한 가족’ 신화에 오래 노출이 되어있었다.


결혼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아이를 낳고 평범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동안 내 주변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맞장구를 쳤다.


생각지도 못한 브레이크가 걸린 건 하필이면 나와 결혼을 한 남자가 무자녀를 꿈꾸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고맙기도 하다.


생각지 못한 딩크 생활을 하면서 그동안 가보지 않은 길을 함부로 재단해버렸던 내 고집과 자만을 마주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는 예전에 갈려서 멀어진 저쪽 길에 대해서도 땅을 밟는 냄새, 볼을 스치는 구름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아이에 대한 확신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행복한 가족’ 신화에 휘둘려 선택을 하지 싶지는 않다.


나중에 혹시 아이를 낳기로 결심을 했더라도 ‘남들 기준의 행복’이 아닌 ‘내 기준의 행복’을 위한 일이고 싶다.


좋은 집과 좋은 차 앞에 남편과 나 그리고 아이들, 만약 그들이 사진 속에서 무표정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행복은 다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남들에게 보이는 사진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만지고 속삭이고 냄새 맡고 마구 비벼댈 수 있는 나만 아는 그런 행복 말이다.


행복은 어떤 신화를 이룰 때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나만의 신화를 만드는 속에 행복은 빼꼼히 고개를 내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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