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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세라 Dec 31. 2020

“정부가 찍어내는 화폐, 정부도 우리처럼 도둑일까”

넷플릭스 집콕 프로젝트 - <종이의 집 시즌1, 2>

2012년 유럽연방위원회가 찍어낸 돈은 1,170억 유로.
당신들이 도둑이라고 하는 우리와 같은 일을 했지.
그렇다면 유럽연방위원회도 도둑일까.


트럼프 대통령이 9천억 달러, 코로나 19 경기부양책에 서명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경기부양책이라는 것은 사실 그만큼 돈을 찍어서 시중에 뿌린다는 것이다. 일명 ‘헬리콥터 머니’. 매년 세계 각국 정부는 양적완화라는 명분으로 돈을 발행해 시중에 풀고 있다. 하지만 그 돈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 주머니에 돌아오는 것은 전년과 다름없는 딱 그 월급 액수뿐인데 말이다. 넷플릭스 최고의 히트작 <종이의 집>은 현대 거시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유동성자금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강도 건인데, 아주 독특해.


<종이의 집>은 강도단의 범죄 이야기를 담고 있는 스페인 드라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단순한 범죄물이었다면 넷플릭스 드라마 2위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종이의 집> 주인공 ‘교수’가 또 다른 주인공 ‘도쿄’에게 자신과 같이 일을 해보지 않겠냐며 건네는 대사.

“강도 건인데, 아주 독특해.”

교수의 말처럼 아주 독특한 강도 이야기이다.


이 강도단의 목표는 돈을 단순히 훔쳐 달아나는 게 아니다. 반대로 조폐국에 침입해 최대한 오래 그곳에 머무는 것이 1차적인 목표, 그 시간 동안 자신들이 가져갈 지폐를 직접 찍는 게 그들의 최종 목표다. 매시간 800만 유로, 그야말로 시간이 돈이다.


교수라는 인물이 이 계획의 중심에 있는데 그는 이 계획을 기획하는 데 자신의 평생 바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8명의 범죄자들을 모으고 그들과 5개월 간 함께 생활하며 자신의 계획을 숙지시키고 훈련시킨다. <종이의 집> 시즌 1과 2는 이들이 3일 간 조폐국을 침입해 인질을 잡아두고 경찰과 대치하며 목표한 돈을 발행해 탈출하는 이야기로 꾸려진다.

조여 오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야 하지만, 화폐를 인쇄하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하는 양단에서 강도단은 경찰과 벌이는 두뇌 싸움으로 매회 아슬아슬 극을 이끌어 간다. 이 과정에서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면 좋겠다만 매번 강도단에게는 돌발 상황이 발생하고 이를 모면하기 위한 에피소드는 그 어떤 작품보다 그 몰입력이 상당하다. 밤을 새우기 딱 좋다.



이건 종이일 뿐이야


이들은 왜 힘들게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돈을 찍어낼까. 조폐국에 쌓여있는 돈을 가지고 재빨리 도망가는 것도 쉽지 않은 마당에 말이다.


첫 번째 이유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화폐 일련번호를 조작해 훔친 돈이 추적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야 돈을 가지고 달아나도 잡히지 않고 여생을 즐기며 살 수 있다. 그 정도 해줘야 강도질 좀 했다고 하지 않겠나. 잡히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명분. 자신들은 도둑이 아니라는 명분을 내밀기 위해서이다.

“2012년에 유럽연방위원회가 찍어낸 돈은 1,170억 유로. 그 돈이 다 어디로 갔는지 알아? 은행이야. 부자들 주머니로 갔어. 하지만 유럽연방위원회를 도둑이라고 하는 사람 봤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이 돈을 찍을 뿐이야. 하지만 은행가를 위한 것이 아닌 진짜 경제를 위한 것이지!”

<종이의 집> 강도들은 현대 경제 전반에 자리 잡은 양적완화 정책을 비꼬며 자신들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정부가 하는 것과 똑같이 하는 것이라고, 더 나아가 정부가 하는 일보다 경제에 더 보탬이 될 테니 오히려 고맙지 않냐 반문을 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건 자신들의 주장일 뿐, 스페인 당국은 끝까지 그들을 쫓을 것이다.



종이 접는 교수, 머리 묶는 경감

<종이의 집>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핵심 두 인물의 심리전이다. 바로 교수와 라켈 경감.


교수는 조폐국 강도를 기획한 전략가이다. 천재이고, 사회성이 결여된 너드 캐릭터다. 교수는 팀원들을 조폐국에 투입시키고, 이후 자신은 조폐국 외부에서 경찰과 협상을 하고, 조폐국 내부를 통제해나간다. 경찰의 대응을 한말 앞서 예측하고 모든 상황을 통제하며 계획하는 인물. 일에 있어서는 빈틈이 없지만 대체로 소심하고 여린 성격에 어리숙한 표정은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종이의 집>이 낳은 최고의 스타다. 경찰과 협상을 할 때 종이를 접는 게 특징이다.


그 대치점에 있는 경찰 측 라켈 경감은 협상 전문가로 조폐국 강도 사건에 총책임자로 투입된다. 극 초반부에는 교수와의 일전에서 밀리는 모습을 자주 보이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교수와 팽팽하게 대치하며 교수를 조여 간다. 협상을 할 때 연필로 머리를 묶는 특징이 있다.

교수는 살바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경찰의 정보를 빼내려는 수법으로 라켈 경감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변수가 생기는데, 그것은 어이없게도 ‘사랑’이다. 교수는 경감 주변을 맴돌다 경감에게 점점 감정을 가지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돈을 발행해 탈출을 하는 일이 급한 마당에 그야말로 맙소사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 이야기는 자칫 그저 평범한 범죄 스릴러가 될 법한 이 작품을 세계적인 작품으로 만든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냉정한 협상가인 둘이 간에 차가운 대결만 있었다면 평범한 범죄 스릴러 장르로 남아 특정 팬에게만 알려졌겠지만, 극의 큰 축을 이루는 이 둘의 관계는 일반 시청자까지 끌어들였다. 들킬 듯 들키지 않는 교수의 정체, 그 팽팽한 긴장감 속 교수와 경감의 사랑은 경찰을 따돌리고 탈출해야 하는 교수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다. 잘 짜인 계획과 틀어지는 상황, 거기서 발생하는 반전과 또 반전. 이 드라마의 매력 포인트이다. 물론, 교수와 경감의 사랑은 그 자체로 반전이고.

변수와 반전은 조폐국 안에서 더 하다. 어떤 사람도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한다는 그들의 첫 번째 규칙은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하면서부터 틀어지고, 이들은 폐쇄된 조폐국에서 점점 감정에 휘둘리며 계획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5개월 간 함께 지내며 이 일만을 훈련한 이들은 익힌대로 잘 해낼 것 같지만 생각치 못한 돌발 상황과 서로 다른 의견으로 충돌하고 서로에게 총까지 겨누는가 하면, 인질에게 동정을 느끼며 감정을 나누기까지 한다. 또, 탈출을 감행하려는 인질들까지 더해져 내부 상황은 그야말로 통제불능 상태까지 간다.

교수가 평생을 바쳐 잘 짜 놓은 각본이 있었지만 인생이 원래 그렇듯 뭐든 정해진 대로 이루어기가 힘든 것 같다. 계속되는 반전에 과연 그들이 무사히 돈을 가지고 빠져나갈 수 있을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우리는 점점 이들의 성공을 기원하게 된다. 그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종이의 집> 스토리만큼이나
그 흥행 성공도 반전 스토리

사실 <종이의 집>은 처음부터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작품이 아니었다. 스페인의 한 지상파 방송국,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KBS나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였다. 의외의 사실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한 그저 그런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탄탄한 각본과 반전을 거듭하는 흡입력, 그리고 배우들의 매력까지 생각해보면 제작사 입장에서는 더 힘이 빠졌을 것이다. 이때 넷플릭스가 제작사에 업로드를 해보라고 제안한다. 시즌1, 2는 그렇게 넷플릭스에 업로드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넷플릭스 드라마 부문 세계 2위가 된다.


넷플릭스는 이후 <종이의 집>의 판권을 사고 독점 제작권과 배급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후속작으로 시즌 3, 4, 5를 제작한다. 성공할 줄 모르고 제작되었던 시즌 1, 2와 대흥행 후 넷플릭스가 제작한 시즌 3, 4, 5은 당연히 차원이 달랐다. 시즌 1, 2에서는 제작비 문제로 해외 촬영 부분을 CG 처리를 해야 했는데 이제는 태국 사원을 통째로 빌려 촬영하기에 이르르게 되니, 한마디로 반전이다. 배우들의 인생도 덩달아 180도 달라졌다. 이제 그들은 스페인의 무명 배우가 아니라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상상이나 했을까. 드라마 내용만큼이나 그 뒷이야기 또한 반전을 가진 <종이의 집>이다.


드라마  반전은 드라마일 
결론적으로 정부는 당연히 도둑이 아니라는 


<종이의 집>은 스토리와 캐릭터, 그리고 배우까지 다양한 매력을 가진 드라마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를 통해 정부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고, 종이 화폐의 가치가 갈수록 떨어지는 현실을 고발한다. 잘 짜인 교수의 계획대로 화폐를 인쇄해 크게 한 건 해보려 하지만 말 그대로 인생 찌질이들이 모인 강도단은 중요한 순간마다 일을 그르치며 언제 잡힐지 모르는 긴장감을 끝까지 가져간다. 이들만큼이나 찌질한 나는 이들의 성공이 마치 나의 성공이라도 되는 양 응원하고 지켜보게 만든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이들을 응원하다 진짜 실행에 옮기지는 말길. 실제 드라마처럼 모방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잡혔다는 뉴스까지 나왔으니 <종이의 집> 영향력이 참 대단하다. 그 영향력 감탄하기 전에 한 가지 집고 넘어가자.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에서 정부는 뭐가 어떻게 되었는 도둑이 아닌 건 확실하고, 이 강도단은 어쨌든 도둑이니.


대신 <종이의 집>이 흥행 실패에서 대성공으로 거두었듯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는 그 가르침만 가져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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