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슷 May 06. 2024

[쓰밤발오41] 말하는 대로

오늘 누워서 핸드폰을 보다가 미래일기를 쓰면 이뤄진다길래 오늘은 미래 시점에서 일기를 써본다. 난 이제 곧 장기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다. 



비행기, 숙소까지 다 예약을 완료했고 이제 남은 일은 환전, 여행 때 필요한 물품들을 사는 것 밖에 남지 않았다. 오랜만에 한 달 넘게 여행하려니까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10년 전과의 나랑 지금의 나는 체력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를 텐데 탈없이 잘 다녀올 수 있겠지? 


혼자 여행을 해보려다가 마침 친구 S도 일을 쉬고 있어서 함께 가기로 했다. 전에 장난으로 한 번 북미여행 가보자고 했었는데, 정말 말했던 대로 상황이 만들어졌다. 부디 사이좋게, 풀어야 할 일이 있으면 다 잘 풀면서 잘 다녀와야겠다. 체력적으로 힘들수록 친구 입장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나만 참는 것이 아니고 친구도 나를 참아주면서 다닌다는 것을 명심하자. 아래는 우리의 대략적인 일정.


우리는 밴쿠버로 입국해서 시계방향으로 돌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출국하기로 했다. 밴쿠버에는 도착해서 이틀만 머물고 바로 비아레일 타고 재스퍼로 넘어갈 생각이다. 10년 전에 여행 왔을 때 다음에 캐나다 오면 꼭 비아레일을 타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드디어 타본다. 비아레일은 지붕부터 창문으로 투명한 칸이 있어 로키산맥을 구경하며 여행하기에 딱 좋은 기차다. 오랜만에 하는 20시간 이동인데 기차 타고 누워 있을 수도 있으니 기대된다. 재스퍼에 도착하면 국립공원에는 안 가고 밴프로 넘어갈 생각이다. 밴프랑 비슷해서 굳이 또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제 무려 운전이 가능하니, 밴프 다운타운에서 레이크 루이스까지는 차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다. 그러고 캘거리로 넘어와 스테이크 한 번 먹고, 토론토로 비행기 타고 이동. 토론토는 그냥 친구 워킹홀리데이 추억여행 겸 나도 내 추억 여행겸 방문할 도시. 나이아가라는 또 안 가도 되겠지? 각자 토론토에 있을 때 맛있게 먹었던 브리또도 꼭 맛보고 뭐가 더 맛있나 대결도 해야겠다. 토론토에서 바로 캐나다 동쪽 섬 뉴펀랜드도 갈 예정이다. 여기는 우리 둘 다 재미있게 본 뮤지컬의 배경이라 가기로 했다.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뉴펀랜드를 마지막으로 캐나다와 작별인사를 하고 미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첫 여행지는 뉴욕. 지난번 뉴욕에 갔을 때 피자랑 베이글을 안 먹어서 꼭 먹을 거다. 이번엔 좀 알아보고 돌아다녀야지. 지난번에 못 갔던 워싱턴도 들리고 우리는 아이오와로 넘어갈 것이다. 아이오와도 좋아하는 뮤지컬의 배경이라서 가기로 했다. 아이오와에 갔다가 여행의 하이라이트 서부 로드트립을 하기로 했다. 내가 이걸 위해서 운전 연습을 아주 열심히 했지. 로드트립으로 서부의 자연환경을 싹 다 훑고, 라스베이거스도 들리고, 디즈니랜드와 유니버셜도 갈 생각이다. 그리고 마지막 샌프란시스코 아웃.


아 이 얼마 만에 하는 장기여행인가. 좀 귀찮고 부담스러웠는데 일정을 나열하니까 또 설렌다. 여행 중인 나와  또 여행 중인 친구에게 서서히 적응할 그 과정들도 설렌다. 무엇보다 여행에서 중요한 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수용하는 마음과 태도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장 쉬운 일이니 감정을 크게 쓰지 않기로 또 다짐한다.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무용담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퉁! 치는 것으로 하자. 친구랑 영상으로도 많이 담기로 했다. 편집할 수 있으면 유튜브에도 올려봐야지. 낯선 곳에서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스펀지가 되길 바라며.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브런치에 매일매일 일기를 남겨야겠다. 



이렇게 쓰는 거 맞겠지? 쓰는 동안 진짜 여행을 곧 앞둔 것처럼 설렜다. 그리고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도 알게 됐다. 나는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이라는 말이 가장 이해가 안 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일상이 어떻게 여행이 되지? 매일 마주하는 일상을 낯설게 보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의문이 많았다. 물론 낯선 곳에 던져진다는 점에서 일상은 여행과 다르다. 하지만 이 미래 일기를 쓰고 보니 알겠다. 어떤 일이 생기든 다 수용하겠다는 이 태도는 일상에서도 갖추면 여행만큼 긍정적으로 하루를 흘려보낼 수 있겠다. 사실 여행에서도 그리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늘 그 방향으로 마음은 틀고 있으니 일상에서보다는 더 긍정적이지 않을까? 내가 일상으로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니까 여행과 닮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긴 해야겠다. 


쓰면 쓸수록 진짜 곧 떠날 것만 같다. 아 이렇게 자기 최면이 걸리다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건가? 자기 전에 이렇게 심장 뛰면 못 자는데 큰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쓰밤발오40] 사랑사랑 누가 말했나 내가 말했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