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의 오래 걸리는 실험_세엣
오늘은 보라색으로 표시한 곳을 정리하기로 했다.
마지막 칸은,
모닝페이지와 오래전부터 써오던 가계부가 들어있는 칸이다.
(나는 손으로 가계부 쓰는 걸 좋아한다..)
피하고 싶었는데 그 마음을 알아챘는지,
'리'가 하던 수납장을 마저 하잔다.
<첫 번째 칸>
다양한 공구용품들이 들어있다.
손 찔릴까 봐 적극적으로 뒤적거리지 않는 칸이기도 하다.
고로 뭐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 칸.
워밍업으로 시작하면 좋을 칸.
<두 번째 칸>
주로 가전제품 설명서나 품질보증서 같은 것들이 들어있다.
모기향도 있네..
고로 잡다한 것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칸>
모닝페이지와 수기가계부가 들어있는 칸인데
잡다한 것들로 뒤덮여 있는 걸 보니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았니.
언제나처럼 다 꺼낸다.
칸 별로 모아보았다.
1번과 2번 칸에서는
나름 고민이 되긴 했지만
큰 어려움 없이 정리할 수 있었다.
특히 공구용품은 간혹 필요할 때가 있어서
몇 가지만 남겨놓고 정리를 했다.
도대체 어디에 쓰는 나사인지 모르겠는 나사들과
도대체 어디에 다는 단추인지 모르겠는 단추들은
전부 버렸다.
여러 개의 가위도 전부 버렸다.
이미 연필꽂이에 튼튼한 문구용 가위가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인 칼은 하나만 남기고 버렸고
두 개인 모기향 중 하나는 보류칸으로 보냈다.
다이소 쇼핑을 거하게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사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들은 보류칸으로 보냈다.
보류칸으로 보낸 물건들은
후에 나눔을 하거나 판매를 할 예정이다!
친구들과 찍은 인생 네 컷 사진들은
핸드폰에 남겨두고 정리를 했다.
그리고 대망의 3번.
지난날의 무의식으로 가득한 모닝페이지와
엑셀 가계부가 얼마나 편한지 아냐는 친구의 말에도
꿋꿋하게 수기로 채워나갔던 나의 가계부들..
가계부를 훑어보면 그날 뭘 했는지
아주 상세하게 적혀 있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닝페이지와 가계부뿐 아니라
일기장도 발견됐다.
지나가버린 나의 하루와 생각들.
나는 갑자기 눈가가 촉촉해지면서
노트들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아무도 이것을 버리라고 하진 않았다.
미니멀의 기준을 살펴보아도 전부 다
버리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나는
기로에 놓인 것 같은 마음이 드는 것일까.
사실은 한 번도 펼쳐본 적이 없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받지도 않는다.
생각 자체를 안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펼쳐보고 싶을 때 언제라도
펼쳐서 추억 속에 잠길 수 있다는
그, 아주 작은 생각이
자꾸만 머뭇거리게 만든다.
말없이 앉아 노트들을 훑어보던 나에게
'리'가 말을 건넨다.
'자, 일어나서 <미니멀을 위한 판단기준>을 읽어볼까?'
'리'는 장난스럽게
가슴에 손을 얹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고
그때 내 마음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도저히 안 되겠는 일기장 두 권만 남기고
전부 버렸다.
이 일기장은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 외의 것들은
다 찢어서 버렸는데
찢는 내내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후련하지도 않았는데
더 이상 내 안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그럼 됐다, 싶었다.
이렇게 정리가 끝났다.
<비운 후 첫 번째 칸>
<비운 후 두 번째 칸>
<비운 후 세 번째 칸>
세 번째, 공구함 칸이 좀 답답하긴 하나
살아가면서 또 비우면 되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