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의 오래 걸리는 실험_네엣
시작하기에 앞서
나는 이곳에서 고백을 하나 하려 한다.
20일 수납장을 비운 그날 밤,
침대에 누워 눈을 꿈뻑거리고 있는데
보류칸에 넣어놓은 선물 받은 동전지갑과 작은 손뜨개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분들께 받은 것이기도 하고
동전지갑은 선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휴대폰에 사진을 남겨두었지만
마음이 영 불편했다.
결국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의자를 밟고 올라가
보류칸에서 동전지갑과 작은 손뜨개를 꺼내 손에 쥐었다.
'아직은 아니야', 하며.
'아깐 너무 감정적이었어..' 하며.
('리'는 모른다. 곧 알게 되겠지..)
오늘은 노란색으로 표시한 칸을 정리하기로 했다.
뭐가 많다.
전부 꺼내 늘어놓는다.
지금 보니 아찔하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서 찍어야 핸드폰 화면에 전부 담긴다.
(앗.. 또 의자를 밟고 올라갔네..)
자전거용품부터 고데기, 구슬, 전구까지
구분 없이 여기저기 쌓여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정리가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비우기에 목적이 있다기보다는
정리정돈에 가까운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추억얘기를 하며 은근슬쩍 보관칸에 넣는다던지,
있는지도 몰랐으면서
아! 이거! 하면서 보관칸에 쓱 넣는다던지.
버리는 것보다
갖가지 이유를 대며
보관/보류를 하기 바빴다.
아무래도 식후라 그런지
혈당의 급상승과 하강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것일 테다.
보류칸에 넣은 것 중,
지난 공연 때
소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주문한 온갖 종류의 화석이
뜯지도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나름 추측을 하며 당근에 나눔을 하기로 했다.
돋보기와 관찰도구들까지 전부 말이다.
(새것이었기 때문에 버리기가 아까웠다)
하지만 이것을 나눔 하기 위해 하나하나 사진을 찍고
약속시간을 잡는 것이 번거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나눔 때까지는 또 집에 가지고 있어야 하니
꼭 그럴 필요가 있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깝지만
전부 버리기로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이 관심 없을 수도 있지.'
라고 읊조리며..
분류를 마치고 남길 물건들을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드는 것이었다.
지금부터는 대화체다.
나 : 아니, '리'.. 이 CD들.. 1년 동안 들어본 적 있어?
들을 기계도 없잖아.
리 : 없지.. 있는지도 몰랐어.
나 : 근데 이걸 왜 남긴다고 했어?
리 : 추억.. 여행 가서 사 온 CD도 많아.. 볼래?..
나 : 자.. 다시 추려보자.
왼쪽은 버렸고
오른쪽은 보류칸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다시 정리를 하고 있는데
내가 무언가를 주섬주섬 수납장에 넣자
'리'가 묻는다.
지금부터 대화체다.
리 : 잠깐, 잠깐. 그거 뭐야?
나 : 이거? 손수건..
(이 손수건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직접 그린 그림으로 제작한 손수건으로,
공연용 소품이었다.
많은 관객을 예상하고
많이 만들었는데
많이 남게 되었다는)
리 : 이걸로 뭐 하려고?
나 : 나중에.. 여행 가서..
사람들 만나면 한 장씩 나눠주려고..
리 : 누구한테?
리 : 모르지.. 여행 가서 만나게 될 사람들..
리 : 이걸 다?..
나 : 아니지? 아.. 하하하.
너무 아까워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렇게 손수건은 보류칸으로 정리 되었다.
한 장만 남기고.
정리가 끝난 수납장.
다시 한번 비교를 해볼까?
이정도면 괜찮지 않나? 라고 생각해본다.
적어도 어디에 뭐가 있는지
이제 한 번에 보이니 말이다.
살아가면서 또 비우면 되니,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