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영화로 바라보는 법 / 상대를 사랑하는 법
개들의 섬
믿고 보는 웨스 앤더슨의 신작 영화이다.
이 때까지 본 영화들 중 가장 충격적인 영화라 하면 단언컨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꼽을 수 있다.
색감으로 워낙 유명세를 끌었던 영화이지만, 연출이나 카메라의 구도 등 하나하나 빠뜨리지 않고 섬세함이 묻어나는 영화이다. 19세 이상 관람가이지만 그 내용을 워낙 재치있게 풀어내 청불이 아닌 듯한 느낌까지 준다. 영화 내의 서사는 살인, 절도 등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요동치지만, 전체적인 영화의 분위기는 큰 기복 없이 잔잔하게 끌고가는 것도 웨스 앤더슨만의 연출방식이다.
그런 웨스 앤더슨이 4년만에 내놓은 애니메이션 신작, <개들의 섬>이다.
영화 초장부터 앤더슨의 느낌이 물씬 난다. 그랜드부다페스트에서도 카메라 장면 전환을 툭툭 끊어서 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개들의 섬> 역시 장면 전환이 부자연스럽고, 감독이 영화 내의 줄거리를 챕터로 나눠서 제시하기도 한다.
스톱모션*방식의 애니메이션이라 엄청난 수의 이미지를 이어붙여 영상을 만들었다. 덕분에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조금은 낮아지는 반면에 오히려 영화를 영화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사견이지만, 웨스 앤더슨의 연출이 미학적이라고 극찬을 받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허구의 세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는 듯한 어색한 화면전환
세상의 부조리함을 너무나도 희극적으로 묘사하는 여럿 장면들
등등은 '영화는 영화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현실과의 경계를 명확히 짓는다는 것은 현실을 들어낸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개들의 섬> 역시 영화는 철저하게 개들의 입장에서 진행되면서 철저히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기분을 끝까지 갖고 가게 해준다.
영화 속의 상황을 현 세상과 대비해보면서 오히려 현재 우리의 세계가 선명하게 빛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해준다. 영화 속 개들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부자연스러운 화면들은 개들이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개들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부조리한 행동들을 정확히 직시하게 된다.
미학에서 예술은 삶을 완전히 들어내는 음각성에서 그 가치가 나온다고 한다.
즉, 우리는 예술에 현실을 대입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가 개입하는 순간 예술은 목적을 갖게 되고 예술이 우리 삶에 있어 유용한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재게 된다. 예술은 유용성이 완전히 배제될 때에 그 가치를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웨스 앤더슨의 영화는 감탄을 자아낸다. 환상적인 색감, 현실 세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대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되고, 영화와 대비되는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환상에 빠진 것처럼 보게 되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 여운이 오래 남는 것은 그 이유에서 일듯 하다.
영화가 던져주는 메세지를 찾으려는 노력 없이, 가볍게 영화를 보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 여운을 가지고 생각에 잠기게 되는. 그것이 바로 앤더슨의 영화이다.
이제부터는 <개들의 섬>에 대한 본격적인 리뷰에 들어가보고자 한다!
영화 줄거리는 네이버 영화의 소개글을 따왔다.
<개들의 섬> 줄거리
인류를 위협하는 개 독감이 퍼지자, 세상의 모든 개들은 쓰레기 섬으로 추방되고, 자신이 사랑하던 개를 잃은 소년은 개를 찾아 홀로 섬으로 떠난다.
소년은 그 곳에서 다섯 마리의 특별한 개들을 만나게 되고, 함께 사라진 개를 찾아가는 그들 앞에 기상천외한 모험이 펼쳐지는데…
개를 사랑한 소년,
소년을 사랑한 개
영화는 개들과 주인공 남자아이 '아타리'의 사랑이야기이다. 그들은 서로를 아끼고 서로를 위해 힘쓴다.
서로 사랑을 하려면 사랑을 받는 법도 알아야 하고 사랑을 주는 법도 알아야 한다. 영화 속 개들과 아타리는 그 두 가지를 매우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잠깐 이야기를 하자면,,
사랑이란 아무 이유없이 나의 시간을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작은 남자아이 아타리는 본인이 길들인 개를 찾아나서기 위해 쓰레기 섬으로 모험을 온다. 쓰레기 섬에서 아타리는 다섯마리의 개들과 관계를 맺는다. 관계맺음은 단순하다. 맛있는 간식을 주고, 꺠끗하게 몸을 씻겨주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아타리는 다른 목적을 갖고 개들을 보살핀 것이 아니다. 그저 개들을 애정하고, 그들에게 시간을 쏟을 수 있을 만큼 개를 사랑하는 법을 아는 남자아이이다. 개를 사랑하는 법을 알기에, 어른들과 같이 개가 병에 걸렸다고 내치지 않는다. 그들을 보듬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한 방법을 진심으로 강구하는 남자아이이다.
개 역시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아는 동물이다. 영화 속 개들은 인간처럼 사고하고, 인간처럼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놀라울 정도로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라 행동한다.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 불가능해보일지라도, 본인들을 길들여준 남자아이 '아타리'를 돕기 위해 무모한 모험에 뛰어든다. 개들이 본인을 길들여준 주인에게 갖는 '충성심'은 순수하고 감정에 충실했기에 숭고하다.
영화 내내 아타리가 내뱉는 말은 많지 않다. 심지어 일어로 말하기도 하는데, 일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나에게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몇 없었다. 하지만 내가 영화를 보는 도중에 감정이 벅차오른 까닭은 무언의 투박한 행동이 더 깊은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스톱모션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장면장면들은 군더더기를 없애주고 주인공의 행동을 오롯이 받아들이게 했고, 순수한 아타리와 개들의 사랑이 감정을 툭툭 건드린다.
영화의 소재와 주제는 어찌보면 매우 단순하다. 개들과 인간의 관계, 사랑.
옛날부터 많이 그려왔고 써먹었던 소재이지만 나에게 특히 큰 감동으로 다가온 데에는 투박함과 순수성이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많이 덧붙이지 않아도, 대화를 못 알아들어도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개들과 사람 사이의 사랑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보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상대에게 댓가를 바라지 않고 베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기에, 개들이 사람을 보고 꼬리를 흔드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순수한 행위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 좋은 영화였다.
리뷰를 써야겠다고 꼭 다짐하게 되었던 영화. <개들의 섬> 꼭 한 번 보는 걸 추천한다..!
영화를 영화로 받아들이는 법과 사랑하는 법에 대해 배우게 되는 영화이다.
*스톱모션 : 스톱모션 기법은 물체를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며 촬영하고서, 이 이미지를 연속으로 붙여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출처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81&aid=00029021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