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헌정시가 아닌, 영화인에 대한 헌정시다
영화에 대한 영화이다
이름하여 메타-영화 라고 할 수 있을까
감독이 제시한 영화계의 모습은
매우 쾌락적이다
현실이 이보다 더할지, 덜할지 모르겠다만 이 장면보다 미학적이진 못할 것 같다
헐벗은 남녀들이 짐승과도 같이 욕망에 허덕이고 있으며, 약과 담배에 취해 이성을 잃은지 오래다
과한 자극에 너무나도 노출된 나머지 현실에 무뎌져버린 위험한 모습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 무뎌지는 건 영화인들의 숙명과도 같다
우리는 혁신적이어야해, 우리는 영감을 줘야해
우리는 필름 위에 꿈을 가지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장면을 아로새겨야지
그걸 본 미래의 외로운 남자가 깜빡이는 화면을 올려다보며 외치겠지
“유레카! 난 혼자가 아니야!”
외로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낭만과 상상을 제시한다.
사람들 기저에 있던 욕망을 끄집어내어 눈 앞에 '아로새긴다'
영화는 욕망 그 자체이고 이것이 영화가 갖는 태생적인 본질과도 같다
이상을 그려내는 영화는 화려하다. 아찔하게 아름다울 정도다.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불에 많은 불나방들이 뛰어든다.
누군가는 목숨을 잃는다. 불을 더 활활 타오르게 하려면 누군가의 죽음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예쁜 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목숨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참으로 값이 저렴해지는 목숨이다.
누군가는 관조한다.
불나방에 뛰어드는 나방을 그저 지켜보며 현상을 기록한다
또 누군가가 불에 타 죽어가고 있고, 누군가가 새롭게 불에 뛰어들고 있구나
누군가는 불에 의해 버려진다
마이너리티의 신비로움을 위해 필요했던 흑인과 동양인은
바로 그 마이너리티로 인해 불에 의해 낙향하거나 버려진다.
누군가는 불에 과한 약료를 흩뜨린다
더욱 강한 불길이 되어 모든 걸 집어삼키도록, 과하고 자극적인 불을 만들어낸다
결국 감독은 이 영화사에 대한 거대한 관념적인 이야기들을 개인의 이야기들로 풀어냈다.
화려한 불에 뛰어드는 무수한 불나방들의 이야기 말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한번 우리는 수많은 불나방들을 상기시킬 수 있다
다 아는 영화들이다. 영사기 속 말을 타는 기수부터 시작해, 아바타까지.
하지만 189분 전에는 몰랐을 법도 한 영화의 비하인드가 갑자기 보이기 시작한다.
여태껏 수많은 영화인들이 일구어낸 영화들,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수많은 개인들의 이야기들.
직전까지 떠나간 영화인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던 매니가, 마지막엔 순식간에 웃음을 지어보인다.
아마도, 매니는 화려한 불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듯 싶다.
아니면 그 타이밍에 보고 있던 영화 속 장면이 재밌었을 수도.
영화는 늘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매니가 보고 있던 싱잉인더레인 영화도 그랬을 것이다.
또 수많은 이들이 그러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힘썼을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스타 배우 잭 콘래드가 누구보다도 인간적으로 따뜻한 사람으로 그려졌다는게
이 영화를 희극으로 만들어줬다
누군가가 비극적 삶이라고 칭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삶은 누구보다도 고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불나방 그 자신들의 삶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는 타인의 입장에서 쉬이 단언할 수 없는 것이다
불나방의 이야기 끝에 결국 영원히 불타오르는 불이 남게 된다면,
후세에도 계속 되돌려보고 떠올리고 상기시키는 불이 있다면
불에 뛰어든 삶도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버거울 정도의 화려함과 미를 좇고 있는 이들에게 삶의 이유를 던져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