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헤라~레데실라델까미노_31.1km
Nájera~Redecilla del Camino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틀 연속 30km를 걸은 후에 오늘은 산또도밍고데라깔사다까지 약 21km만 걷는 거였다.
그런데 숙소를 알아보던 중에 10여킬로 더 간 곳에 무려 구글평점 9.8인 알베르게가 있길래 안되면 말구 하는 생각으로 예약 메일을 보냈는데 덜컥 가능하다고 답장이 왔다.
그래서 오늘, 장장 32km에 도전한다.
하필 금요일 밤이라 새벽 한두시까지 골목에서 떠들어대는 현지 주민들 소음때문에 잠을 설쳤다.
어제의 숙취에도 불구하고 Y군이 부스럭대는 소리에 잠을 깬 시간이 새벽 4시 10분쯤, 더 자려야 잠들 것 같지도 않기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4시 50분에 길을 나섰다.
나를 배웅해주는 건 골목에서 발 흔들어주던 털이 하얗고 귀가 새까만 고양이뿐, 작은 도시라 벗어나는 시간도 짧아서 바로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던져졌다.
다음 마을까지는 5km, 길에서 만난 건 반대편에서 마주오며 스쳐간 자동차 한대뿐, 새벽 관수를 하는 모터소리에도 예민해지던 먼 길이었다.
새벽 6시, 멀리서 울려퍼지는 성당소리에 마을이 멀지 않았다고 안심하며 걷는 길, 새벽 닭울음소리도 여러집에서 흘러나오니 비로소 첫 마을에 닿았다.
아소프라는 골목에 가로등은 환했으나 아직 인적은 없는, 집집마다 불이 꺼져있으니 기괴한 영화속 마을에 들어온 느낌이었으나 조금 가다보니 영업을 준비하는 레스토랑이 있고, 고소한 냄새의 바게뜨를 배달하는 차량도 있다.
네개의 수도꼭지와 뒤쪽에 식용 수도꼭지 한개가 위치한 마을 광장에서 잠시 쉬었다 다시 출발했다.
그런데 마을을 막 빠져나갈 무렵 한국인으로 보이는, 그동안 여러 사람들한테, 심지어 외국인들한테도 한국인 모녀가 걷고 있다고 들어왔던터라 궁금했던 분들을 딱 마주친다.
어제 이곳에서 묵었는데 작은 도시라선지 식료품점도 바가지 물가라 과일 하나 못사셨고 가지고 있던 신라면으로저녁을 때우고는 오늘 산또도밍고데라깔사다까지 15킬로만 걷겠다신다.
육십구세라는 어머니의 컨디션이 별로라고는 하는데도 모녀가 다정하게 걷는 모습이 참 이뻐보여서 일출 즈음에 사진도 찍어드리고 두시간쯤 걸은 후에 어제 장봐왔던 바나나를 한개씩 나눠먹고 바로 다음 마을 시루에냐에서 헤어진다.
두분은 여유로운 일정에다 간단히 브런치를 원하시는 것 같은데 난 갈길이 먼 터라 다음을 기약하고 앞서 걷기로...
다음 마을, 원래의 목적지였던 산또도밍고데라깔사다와 그라뇽까지는 12km가 넘는 길인데도 지루하지는 않다.
밀을 경작한 수확지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군데군데 나무와 숲과 구름낀 하늘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고 있으니 필름작업을 해보고도 싶으나 그럴러면 1박2일은 더 걸릴터라 이번 여행, 필름작업은 포기하기로 한다.
그라뇽을 막 들어서는데 누가 불러서 돌아보니 한국인이다. 까미노에서 만났던 분은 아니라서 눈이 동그랗게 쳐다보니 그라뇽의 도네티브알베르게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단다. 함들어보이니 쉬어가라며 마시던 음료를 권한다. 막 따른 거라고, 다 마셔도 좋다고... 염치불구하고 음료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다.
작년에 까미노를 걸었는데 산티아고콤포스텔라에 막상 도착했을때 비가 많이 내리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까미노 친구들을 하나도 못만났었다고, 그렇게 번잡하게 끝내기는 아쉬우니 피스떼라 묵시아까지 꼭 걸어보란다.
그럴려면 최소3일은 더 걸어야하니 지금보다 더 빡시게 달려야 하는데,,, 되는대로 가보자는 마음이다.
다음 마을로 예약만 안했으면 그라뇽에서 도네티브알베르게 체험을 해보고 싶었으나 이미 예약을 한 관계로 무거운 엉덩이를 들어 남은 3km를 중간에 한번 쉬어가며 걷는다.
중간에 잠실의 H양이 오늘 최고기온 40도, 내일 42도라며 물 많이 먹고 천천히 걸으라 한다.
발에 물집이 생겨서 팜플로냐부터 쳐졌었는데 오늘은 이틀치를 버스로 점프해서 어제 내가 묵은 숙소에 와 있단다.
내 왼쪽 발바닥도 물집이 생기려는지 조짐이 안좋아서 그라뇽의 약국에 들러 콤피드를 구입했다.
까미노에서 한국인을 참 많이 만난다. 까미노를 걷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이 있을리 만무하니 좋은 만남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저녁식사는 알베르게에서 유럽남성 5명과 여자는 나뿐인 샤이한 자리였는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남성들이 특유의 강한 개성을 거지고 노는 모습들이 참 지루하지 않다. 특히 스페인에 사는 미키루크를 똑닮은 이탈리안 남성이 좌중을 주도하면서 웃겨주시는 달콤함이란 역시 이탈리아노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저러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잖아⁉️
콤피드 7.95
숙박 15
저녁 11
합계 33.95유로
토욜이라 마트를 못가서 내일 간식거리가 없어서 어쩐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