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히르 Aug 18. 2024

8/17 까미노 16일차

모라띠노스~비야마르꼬_35km

Moratinos~Villamarco


레온까지 65km 남았다. 그런데 엘부르고라네르 El Burgo Ranero까지는 27킬로라 넘 짧고 렐리에고스 Reliegos까지는 40킬로가 넘는 거리다.


궁여지책으로 그 사이에 있지만 까미노 길에서는 1킬로 이상 떨어져있는 비야마르꼬를 거쳐가기로 했다.

비야마르꼬 알베르게 내 방 창문에서 바라본 압도적으로 멋진 일몰이다
도착했을 땐 이랬던 하늘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 6~7일 정도에 가는 거리를 5일만에 끊으려니 순례자들이 주로 거쳐가는 거점 도시들에 머물수는 없지만 마트에서 식료품 사는 정도의 불편만 따를 뿐 숙소는 머무는 순례자가 많지 않아서 오히려 쾌적한 편이다.


모라띠노스에서 당연히 새벽 4시대에 출발해서 산니꼴라스델레알까미노 San Nicolás del Real Camino는 스치듯 지나고 한참을 더 걸어 다리를 건너니 뿌엔떼산따마리아성당일텐데 어두워서 보이질 않는다.  

사아군 Sahagún까지 30분 정도를 이동하는 동안에 여명이 밝아오는 데 하늘이 미쳤다.

악마의 기운이 확 덮쳐오는 하늘에 깜짝 놀라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을 외야 할 정도로 무서운 하늘이다. 전 아무 잘못한게 없어요~~


여명이 밝아오는 사아군에서 또르띠야와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걷는 길, 또 하늘이 미쳤다.  


이번엔 천사의 날갯짓인가요. 한시간만에 돌변하는 하늘입니다.

이 길에서 이 하늘을 본 것만으로도 오늘은 끝장이구나, 이후의 길은 덤일게다.

남은 거리도 331에서 327로... 팍팍 줄어드는 하루다. 벌써 절반을 훌쩍 넘겼다.

사아군에서 10킬로 베르시아노스델레알까미노 Bercianos del Real Camino까지도 자동차 도로옆 까미노인데 오늘은 옥수수밭이 주로 눈에 띄는게 다를 뿐이다.

 이래서 이곳을, 부르고스~레온의 일부를 점프하는 순례자들이 많은가보다. 잠실의 H양과 부천의 S군도 오늘 오후 까리온에서 바로 레온으로 넘어가 연박하면서 물집으로 어우러진 발을 좀 추스리고 일욜에 우리와 4인실로 예약해둔 콘도에서 잘해먹고 월욜부터 다시 걸을 예정이다.  


엘부르고라네로 El Burgo Ranero에서는 장을 보았다. 오늘 숙소가 까미노에서 동떨어진데다 별반 편의시설이 없는 곳이라 저녁을 해먹어야 하는데 손선생님께 신라면이 있대서 쌀과 김치, 빵, 생수, 이온음료에 맥주까지 사고보니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이걸들고 7킬로를 더 가야 한다는...

절반 가까이 나누어 큰 건 손선생님 배낭에, 작은 건 장바구니로 내가 드는데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에다 정바구니까지 얹어지니 남은 7킬로를 두번이나 쉬어가면서 걷는다.

그 와중에 한국에서 오신 순례자도 세 분을 만난다. 젊은 두 남여는 마트에서 잠깐 인사만 나누고, 중장년층이신 남자분은 아직 17킬로를 더 가야 한다시면서 같이 오신 선배님이 족저근막염으로 택시로 오늘의 목적지까지 이동해 계신터라 혼자 걷는 길, 본인은 2~3킬로마다 쉬어가는 길을 선배님은 씩씩하게 빨리 걸으시다가 결국엔 탈이 났다고 한다.

2~3킬로마다 쉬어가면서 17킬로를 더 가려면 이 더위에 적어도 오후 5시는 넘어서 도착하실 듯, 염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까미노가 동행으로 오긴 쉽지 않은 곳이다. 저마다 깜량이 달라서 800킬로를 같이 걷는다는게 쉽지 않다.

건강하다고 자신해서, 젊다고 자신해서 오버페이스를 하면 며칠 지나지않아서 탈이 나게 마련이다.

내 몸의 아우성에 귀기울이면서 천천히 적응해가야 하는 길이다.  

그런데 어쩌면 오늘포함해서 요 며칠 나도 오버페이스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레온 이후부터는 종반으로 치닫는만큼 페이스 조절하며 가야겠다.

그나저나 오늘 좀 힘든 하루, 2시에 숙소에 도착했는데도 맞아주는 사람이 없다. 전화도 왓츠앱 메세지에도 답이 없다.

하는 수없이 손선생님과 350미터로 나오는 미니 바에 가서 생맥주로 갈증을 푸는데, 그제서야 왓츠앱에 답이오길 미니바에 있단다.  

그럼 야외테이블 저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라는 건데, 언제 알베르게 열거냐니까 7시란다. 지금 장난하는거냐고!!!

도대체 어떤 x인지 사람들을 살펴보던 중 희희낙낙하면서 우리를 살피는 집단 발견, 저 노랑셔츠의 얌생이같은 수염의 남자가 분명하다.  계속 째려보고 있으니 다가와서 악수를 청한다. 더웃긴건 알베르게에 갈 생각은 1도 없이 열쇠꾸러미에서 열쇠를 하나 빼주면서 너희들끼리 가서 체크인하란다. 몇시에 올거냐니까 7시라고는 하는데 느낌이 좋지않다. 오늘이 토욜이니 이 미니바의 술이 동날때까지 또 먹고 마시고들 밤새 놀아대겠지....

아니나다를까 열쇠로 문열고 들어와서 2인실 방2개, 4인실 방 하나인 곳을 2인실만 아래층 침대로 하나씩 차지하고 각자 샤워하고 세탁기 돌리고, 그와중에 서양 남자아이 하나를 맞아들이는 동안에도 이 집 주인님은 나타나질 않는다.

밤새려는게 맞아, 그럼 조그만 탁자 하나뿐인 리셉션에다 알베르게 비용만 남겨두고 새벽에 떠나야 하는 걸까.

재밌는 하루다.  

그 와중에 이 저렴한 방에서 저렇게 고급진 일몰을 보게 될 줄이야⁉️


아침 4 또르띠야 커피

마트 9 쌀 김치 생수 이온음료. 빵

맥주 5 병1 생1

숙소 5


합계 23유로


매거진의 이전글 8/16 까미노 15일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