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후기
한국의 근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히 읽게 된 박완서작가의 <나목>을 접한 뒤부터였다. 박완서 작가가 바라본 박수근의 그림에 대한 솔직하고 담백한 설명들을 읽으며 그림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알고 보니 나무와 두 여인이라는 이름의 그림이었다. 박수근 화백의 투박한 표현 속에서 어떻게든 고통을 참고 기다리라 나지막이 읊조리는 듯한 화가의 인내가 느껴졌다. 그의 그림은 유화물감으로 그려졌지만 우둘투둘한 거친 표면이 한국 민족의 상처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멀리서 보면 과거를 떠올리는 희미한 기억 혹은 기다리는 앞날에 대한 뿌연 희망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중 길에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그린 근현대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한다는 홍보물을 보았다. 그 시대 작가들이 바라본 고향에 대한 시선이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해졌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작가들만큼이나 파란만장하지는 않지만 나 또한 타지에서 향수를 진하게 느껴보았기에 전시를 꼭 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해졌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관람료는 단돈 2000원이었다. 이 커피값도 안 되는 가격의 혜택은 아마 '국립'인 덕분일 것이다. 전시는 총 4개의 관으로 나뉘어있었다.
우선 일제강점기 때 그려진 화가들의 고향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빼앗긴 땅이어서 혹은 고향에 가기 어려운 처지였기에 더욱더 찬란하게 보였던 것 마냥 아름다우면서도 진한 향수병이 느껴졌다. 특히 화가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기억 속에 있는 그들의 어린 시절처럼 활기 넘치는 나무들과 산 그리고 정 많은 마을의 거리와 초가집을 통해 그리움을 표현했다. 빼앗긴 땅일지언정 한반도 땅만의 아름답고 사계절의 개성이 강한 생명력이 화폭위에 표현되었다. 활기찬 것들은 자연뿐 아니었다. 일제가 한반도에 군사물자 등을 위해 만든 공장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와 부두의 배들 또한 바쁘게 보였다. 나라 뺏긴 사람들의 서러움과는 상반되는 그 활기 있는 모습이 더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발걸음을 옮겨 6.25 전쟁 이후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 우리 고향 땅은 보면 처참히 무너져 있고 찢긴 듯 보였다. 폐허가 되고 반쪽 밖에 안 남은 앙상한 건물들처럼 대상의 표현 또한 온전히 그려지기보다는 분할되어 있고 어떤 부분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그려지기도 했다. 그들의 깨진 일상처럼 조각조각난 화면 구성으로 피난 가는 여정을 그린 그림도 볼 수 있었다. 물동이인 듯 무언가를 머리에 이고 하염없이 서있는 여성을 그린 그림에서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시간이 지나 희미해진 듯 마치 꿈인 듯 보였다. 어떤 그림에선 마치 폭탄으로부터 생긴 불이 시간이 지나 꺼지고 연기만 자욱한 황폐화된 도시도 보였다.
예술은 이렇게 그들이 살던 시절의 역사와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거짓말을 못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 외에도 그 시대 작가들이 서양회화와 재료를 접하면서 그들만의 화풍을 만들어나가는 것 또한 재미있는 요소였다.
2월 말까지 하는 것 같은 이 전시,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구성과 그림들이었기에 왕왕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