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가 그리는 민화 / 아이패드민화
자칭 취미부자답게 새로운 취미를 하나 들였다. 바로 민화 그리기다. 민화를 처음 그려본 것은 7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가기를 준비할 때 그림을 하나 그려서 갖고 가고 싶었을 때였다. 어떤 걸 그려야 할까 하다가 로망으로 품고 있던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어떤 것으로 집을 장식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끌려 작은 모란도와 오리와 연꽃이 있는 조금 더 큰 그림 두 개를 그린 것이었다. 이때는 그저 큰 생각 없이 색칠공부하듯 그렸던 것 같다. 그리고 생각보다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에 놀랐고 오롯이 집중하지 않으면 선이 삐뚤어지기 때문에 딴 잡생각을 하기 어려웠다.
감사하게도 어릴 때부터 좋은 스승님들을 많이 만나왔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진심을 담아 가르치고 계신 선생님을 만나서 배우고 있다. 실제로 종이 위에 그리는 화실도 다니고 아이패드 민화수업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취미로 시작했는데 가볍기보단 진지하게 임하고 있고 마음이 점점 깊어진다.
또 재미난 것은 서양화 수채화나 동양화나 기본적인 바탕은 같다는 것이다. 생각 없이 그리면 안 된다는 것. 장승업을 그린 영화 취화선에서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 것 같다. 선을 그리기 전에 너의 뜻이 먼저 세워져야 한다고.
아이패드 민화 선생님과 수업을 들으며 처음 그린 것은 신명연의 산수화훼도였다. 모사였지만 그냥 따라 그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작가가 이 선을 그을 때 색을 어느 곳을 왜 이렇게 칠했는지 생각하고 내가 다시 재해석해보며 최대한 배우려 했다. 아이패드건 순지 위에서나 많은 고민이 배움에 있어서 중요했다.
나에게 민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온 이유 첫번째는 색감 때문이었다. 강렬하고도 알록달록한 색감들이 오히려 절제된 것 보다 더 귀엽게 느껴졌다.
그리고 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민화는 사람들의 소망을 가득 담고있다는 걸 알았다. 언뜻보면 부적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무섭지는 않고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작은 소망 종합세트처럼 보였다. 자식을 많이 낳고 건강하고 양반들은 과거급제 턱턱 붙고 역시나 또 자손 번성하고 건강하게 무탈한 것들이 보통의 주제였다.
어떤 그림들은 감상을 목적으로 그려진 것들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민화들은 이런 현실적이고도 사람들의 이야기 그자체여서 큰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듯 보였고 어떤 그림들은 지금의 눈으로 보아도 되게 못그렸다 싶은 그림들도 많다. 오히려 이런 그림들이 나에게는 마티스의 그림만큼이나 재밌어보였고 연구대상이다.
나는 디자이너로 일해왔고 아마도 나의 피에는 디자이너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앞으로 나만의 민화를 그린다면 어떤 걸 그리게 될 지 머릿속이 오색 풍선으로 가득한 듯 해 복잡하지만 열심히 그려볼 생각이다. 계획은 세우지만 모든 것들이 내 계획대로 그대로 된 적은 없다. 하면서 부딪히면서 더 좋은 것들을 만나왔기에 앞으로 어떤 것들을 그리게 될 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