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연작, 세 번째 이야기

아흔아홉 냥 가진 이가 한 냥이 전부인 이의 한 냥을 탐내는 것

by 지아나킴

책을 읽다가 어느 구절에서 뜨끔할 때가 있다. 바로 나의 내면에 가지고 있던 부끄러운 마음을 작가가 책의 주인공을 통해 내 속을 들여다본 듯이 보여줄 때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 <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에서 혁주와 재혼한 애숙이 남편과 전부인 사이의 아들을 이 소설의 주인공인 전부인으로부터 뺏어오려는 상황이었다. 애숙은 부유층에 속하고 남편과 그리고 자녀도 있고 모든 것을 다 가진 이에 속하는 인물이다.


애숙은 마치 아흔아홉 냥 가진 이가 한 냥 가진 이의 모든 것인 한 냥을 기어코 빼앗고 말겠다는 옛말 그대로 비정한 속마음을 온화한 눈빛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뜨끔해졌다. 등장인물 애숙의 눈빛에서 나의 자화상을 본 것 같은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나는 아홉 개를 넘치게 가진 애숙만큼 부자는 아니지만 하나도 없을 때보다는 한 두 개 더 가질수록 욕심이 달아오를 때가 있다. 또한 그럴수록 내 눈빛은 살벌함보다는 우아해 보여야 한다는 교만한 온화함을 드러냈다.


손실을 조금이라도 내지 않으려는 계산일 때도 있지만 이 책의 애숙처럼 그것마저 가져 완벽한 것을 가지고 싶었던 질투에서 비롯된 욕심일 때도 있다.


내 상 위에는 이미 사과가 가득한데 가까운 이웃이 좋은 사과 하나 얻었다고 하면 그 한 개가 그렇게 탐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탐내고 있는지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한다. 온화한 눈빛을 하고 웃으며 축하도 해준다.


다행인 것인지 나는 체질적으로 편두통이 자주 일어나 조금만 욕심내고 신경 쓰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그럴 때는 그냥 나자빠져 버리고 내 손에 있는 사과가 얼마나 맛있는지 깨달으며 이웃의 사과 한 개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 여유를 되찾는다. 머리가 아픈 탓에 욕심의 마법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아흔아홉개 사과와 한개의 사과, 2026

나를 포함한 많은 인간들이 가질법한 욕심의 형태를 사과에 투영했다.

그런데 사과 한 개를 가진 이는 욕심이 없을까?라고 질문해 본다면 아마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도 대답이 이어졌다. 아마 사과 한 개를 가진 이는 그 옆에 있는 개다리소반만도 못한 상을 탐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