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용기와 미친 과학
코넬 대학교의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
David Dunning of Cornell University and Justin Kruger of the University of Illinois
역대급 은행털이
1995년, 맥아더 윌러라는 은행강도가 은행을 털었습니다. 그런데 비주얼이 일반적인 은행강도랑은 좀 달랐습니다. 쌩얼이었거든요. 그러니까 복면을 쓰지 ‘않고(...)’ 은행을 털었습니다.
그는 그대로 CCTV에 찍혔고, 그날 밤 11시 뉴스에 나온 뒤 한 시간도 안되어 잡혔습니다. 뻔하게 잡힐 짓을 왜 한 걸까요?
경찰이 묻자 맥아더 윌러는 ‘얼굴에 레몬주스를 발랐다’는 명언을 남깁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으시죠? 어릴 때 혹시 안 보이는 편지 써보셨나요? 레몬즙으로 글씨를 쓰면 투명하지만, 다 마른 뒤 불로 그을리면 글자를 쓴 부분만 까매집니다.
그는 그걸 떠올리고, 레몬주스를 얼굴에 바르면 얼굴이 투명해져서 CCTV에 찍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한 겁니다.
이런 모지리가 있나 싶으셨다면 정상입니다. 그리고 그 모지리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연구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시 코넬대학의 심리학 교수였던 데이비드 더닝 교수와 대학원생이었던 저스틴 크루거입니다.
이들이 자신감이 조금만 적었더라면...
잊을 만하면 한 번 씩 새로운 맞춤법 빌런이 인터넷을 휩씁니다. 유명한 마마잃은 중천공(남아일언중천금) 부터 명예회손(명예훼손), 덮집회의(더치페이), 왜승모(외숙모), 오회말카드(omr카드), 힘들면 시험시험해(쉬엄쉬엄), 나물할 때 없다(나무랄 데 없다), 에어컨 시래기(실외기), 맥심원(맥시멈), 일해라 절해라(이래라 저래라) 하지마라….등등 충격과 공포의 명언이 지금도 웹상을 떠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충격과 공포의 맞춤법들을 탄생시켰던 사람들은 다들 이 단어가 맞다는 자신감에 차있습니다. 마치 레몬주스 은행강도처럼 말이죠.
더닝이랑 크루거가 그러는데, 무식하면 용감할 수밖에 없답니다
<실험방법>
1. 문제를 풀 사람들을 모은다.
- 더닝과 크루거는 코넬대학교 학생들에게 유머, 논리 추론, 문법 문제를 풀어달라고 했다
2. 본인이 상위 몇% 일지 추측하게 한다
3. 실제 등수와 비교한다
더닝과 크루거는 성적에 따라 집단 전체를 넷으로 나눴습니다. 그리고 실제 등수와 스스로 예상한 등수를 비교했습니다. 가장 하위권을 하수, 가장 상위권을 고수라고 불러봅시다.
맞춤법 빌런들처럼, 하수들은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중간 이상은 갈 줄 알았다고 답했거든요. 마냥 남 일이라고만 생각은 마세요. 마치 시험 직전에 벼락치기를 해서 왠지 모를 자신이 솟구치는 상태와 비슷한 거니까요.
시험 전날의 저를 포함해서, 하수들은 왜 실력에 비해 자신감이 넘칠까요? ㅠㅠㅠ
더닝과 크루거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모르는지 모른다는 특성 때문에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됩니다. 내가 문법상 틀린 문장을 썼는지는, 문법을 알아야 틀린 줄 알 수 있습니다.
뭔가를 모른다는 건, 내가 같은 것을 모르는지 판단할 기준도 모른다는 것과 같은 겁니다. 아이러니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입니까?
하수든 고수든 간에,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상위 60~70% 정도 일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즉, 상위권이었던 사람들은 반대로 자신이 실제로 받은 등수보다 더 낮을 것이라고 예상한 겁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성적이 낮은 사람들과 반대였습니다. 성적이 낮은 사람들은 본인을 과대평가했던 반면, 능력자들은 남들도 다 자기만큼 하는 줄 알아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즉, 타인을 과대평가한 거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더닝과 크루거는 이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이들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스스로 판단하게 하기 전, 남이 풀어놓은 답안을 먼저 보고 평가하게 해봤습니다.
고수들은 판단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들이 풀어놓은 문제를 보고 남들이 못한다는 객관적인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 자기 스스로를 평가하게 하자, 본인이 남들보다 더 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하수들, 본인이 하수임을 깨달을 수 있을까?
얕은 지식은 위험합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는 말이 그거죠. 앞서 말한 은행강도는 잡혔고, 유사과학을 토대로 한 건강식품들은 도리어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합니다. 본인뿐 아니라 주변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따라서 더닝과 크루거는 하수가 스스로의 무능을 깨닫게 하는 방법이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더닝과 크루거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ㅠㅠㅠ
앞서 고수들은 남이 하는 걸 보고 내가 잘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했죠? 그러나 하수들은 남이 한 것을 먼저 봐봐야, 판단기준이 없어 남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와 비교도 안되고, 여전히 스스로를 과대평가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판단기준을 알려줄 수는 없을까요? 그것도 실패했습니다. 하수에게 판단기준을 알려준다는 건, 곧 해당 지식을 알려주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수인 상태로 내 위치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유식해져 버린 것이기 때문이었죠. 역시 아이러니합니다.
자신감이 떡상했다면 한번 의심해봅시다
더닝과 크루거의 연구 덕분에 이제는 무식하면 용감하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걸 논리적으로 확신할 수 있게 됐습니다. 따라서 이를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더닝 크루거 효과를 이런 그림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아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자신감을 가질 일도 없겠지만,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이 분야의 모든 걸 이해한 것처럼 자신감의 정점을 찍게 됩니다. 그러나 더 알게 되면, 도리어 내가 모르는 게 많았다는 걸 깨달으며 자신감이 감소합니다. 알면 알수록 스스로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더 깨달으며 좌절의 늪으로 빠져들어갑니다.
대학원생들의 흔한 농담
학사: 이제 자기 분야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함.
석사: 자기는 아는 것이 정말 아무것도 없었음을 알게 됨.
박사: 남들도 다 마찬가지임을 알게 됨.
웃픕니다ㅠㅠㅠ 근데 어쨌거나 더닝 크루거 효과가 기가 막히게 잘 맞아들어가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더닝-크루거 그래프는 기술의 성숙도와 과대광고 주기를 말하는 하이프 사이클을 패러디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이프 사이클은 기술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시간에 따른 대중의 기대를 나타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기술도 잘 모를 때 대중의 기대감이 피크를 찍습니다. 마치 비트코인처럼요….뚀르르..
개인에게서 보이는 지식에 따른 자신감과, 집단인 대중에게서 보이는 기대감의 형태가 비슷하다는 것도 새삼스레 신기합니다.
자신감이 뿜뿜한다면 조심하는 수밖에
시대가 흐르면서 이런 사람들을 부르는 이름도 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선무당이 사람을 잡더니, 한 때는 근거 없는 자신감(근자감)이 온라인을 지배하고. 요즘 대세는 인터넷 여포입니다. 앞으론 뭐가 될까요?ㅋㅋ
한 때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면, 뒤에서 한 번씩 누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닌데”
요즘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게임 스트리머들의 방송에서요.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말한 사람 시켜보면 잘 못합니다. 괜한 자신감 때문에 쪽팔리게 됐네요. 역시 근자감은 위험합니다.
이들의 연구 덕에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 분야에서, 특히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 특히 온라인에서 이야기를 할 때 내면에 있는 키보드 워리어의 기운이 욱 하고 올라온다면, 사실 내가 뭣도 모르고 있는게 아닌지 한 번 더 확인해보는 습관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것 같습니다.
더닝과 크루거는 무식하면 용감하다를 논리적으로 증명한 업적을 인정받아, 2000년 이그노벨 심리학상의 주인공이 됩니다. 한 번 웃고, 그 다음 생각하게 만드는 업적에 수여하는 상인 이그노벨상에 잘 어울리네요.
<참고자료>
Kruger, Justin, and David Dunning. "Unskilled and unaware of it: how difficulties in recognizing one's own incompetence lead to inflated self-assessment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77.6 (1999): 1121.
Anson, I. G. (2018). Partisanship, Political Knowledge, and the Dunning‐Kruger Effect. Political Psychology.
https://www.gartner.com/en/research/methodologies/gartner-hype-cy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