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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과 Nov 26. 2018

삶은 달걀과 미친과학

삶은 달걀로 날달걀을 만드는 레시피 개발자들


서호주 대학교의 캘럼 올몬드, 콜린 래스톤 교수,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의 그레고리 와이스, 톰 유앤, 스테판 쿠드라첵, 사미란 쿤셔, 조슈아 스미스, 윌리엄 브라운, 케이틀린 푸글레시, 티볼리 올슨, 마리암 이프티카

Callum F. G. Ormonde, Colin L. Raston, Gregory A. Weiss, Tom Z. Yuan, Stephan T. Kudlacek, Sameeran Kunche, Joshua N. Smith, William A. Brown, Kaitlin M. Pugliese, Tivoli J. Olsen, Mariam Iftikhar,




‘삶은 달걀은 날달걀로 되돌릴 수 없다.’ 한 때는 상식이었으나, 더 이상은 아닙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캘럼 올몬드와 콜린 래스톤 교수는 삶은 달걀을 날달걀로 되돌리는 레시피를 개발했습니다. 심지어 화학적 방법도 아니라, 기계로 액체를 휘저어서 원래 상태로 되돌렸습니다.



서호주 대학교 마지막 학기였던 캘럼 올몬드와 그의 지도교수 콜린 래스톤,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의 그레고리 와이스 교수. 이 자들 입니다.


차례로 캘럼 올몬드(TEDx talk), 콜린 래스톤(출처: The Lead Australia), 그레고리 와이스(TEDx talk)


<실험방법>
1. 계란 흰자를 90℃로 삶는다
2. 익은 흰자에 요소를 넣어 녹인다
3. 45도 기울이고 초당 5000번 회전시킨다- 이게 핵심!
4. 다시 날달걀!

아래는 이 실험을 하는 영상입니다.


https://youtu.be/0msE39RgjgA





근데, 달걀이 삶아지는건 뭐지?



달걀에 열을 가하면 달걀이 삶아집니다. 달걀 단백질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날달걀 단백질을 아주 많이 확대해보면, 단백질이 접힌 공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작은 덩어리 하나를 털실뭉치라고 생각해보세요. 달걀 하나는 털실뭉치가 여러개 들어있는 바구니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날달걀은 털실뭉치같다면


그런데 열을 가해 달걀을 익히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그 바구니를 강하게 흔든다고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뭉쳐있던 털실, 즉 각각의 단백질이 펴집니다. 펴지는데 왜 단단해지냐고요? 주변 분자들과 상호작용이 증가하기 대문입니다. 털실들이 다 풀린채로 바구니 안에서 서로 꼬여 큰 실타래를 이루는 장면을 생각해보시면 됩니다. 훨씬 덩어리져있죠?



삶은달걀은 그게 다 풀려서 엉켜서 한 덩어리가 된 셈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된 삶은달걀을 다시 날달걀로 돌리는건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와류(voltex)가 그걸 해냅니다


삶은달걀에 요소를 넣으면 고체였던 삶은달걀이 투명한 액체가 됩니다. 펴진 단백질들 끼리 그러나 아직 날달걀로 돌아간 건 아닙니다. 다시 열을 가해도 익지 않죠.


와류생성기 앞에 있는 콜린 래스톤 교수


단백질들이 꼬여있는 큰 실타래를 푸는 일은 만만치 않습니다. 근데 그걸 와류 생성기(voltex fluid device)가 해냅니다. 콜린 래스톤 교수가 직접 만든 와류 생성기는 시험관이 회전하면서 아래 쪽에 고여있던 액체상태의 익은 달걀 단백질을 시험관 벽에 얇은 막으로 펴지게 만듭니다. 그리고 액체는 한 방향으로 흐르는데, 필름 바깥쪽과 안쪽에서 흐르는 속도 차이가 생깁니다. 따라서 흐르는 방향 반대로 소용돌이치는 와류(voltex)가 생깁니다. 그 와류가 엉겨있는 단백질 분자들을 분리시키고, 단백질들은 원래대로 접힙니다.





한 대학생은 인생에 대박이 찾아왔어요


이 연구는 ‘삶은 달걀을 날달걀로 바꿔야지’에서 시작한게 아니었습니다. 종양세포에 약물을 전달하는 방법 찾기였습니다.


대학교 마지막 학기였던 캘럼 올몬드는 콜린 래스톤교수로부터 와류생성장치를 이용해서 종양세포에 약물을 전달하는 방법을 찾으라는 미션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써야 하는 단백질은 비쌌기 때문에, 그 전에 이 자는 라이소자임이라는 저렴한 단백질을 와류생성기에 넣고 테스트를 한번 해봤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이상하게 나온겁니다. 결과를 분석하는 방법은 골치아프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건 캘럼 올몬드가 잔뜩 쫄았다는 겁니다.


아 왜이래ㅠㅠ고장났나봐ㅠㅠ


이 자는 자기가 기계를 망가뜨린 것 같다고 선배에게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기기 점검 후, 두 가지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기계는 멀쩡했고, 이 자는 호들갑 떠는 사람이라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기계가 멀쩡하다면, 호들갑쟁이의 실험은 알지 못하던 뭔가를 의미하는 거겠죠? 그게 대박이었던 겁니다. 와류생성기는 엉켜있던 라이소자임 단백질을 풀었습니다. 기계적 힘으로 꼬인 단백질을 푸는건 이제까지 전무후무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단백질을 다루는 방식을 바꿀 수 있는 연구였으니까요. 자연계에 없던 단백질의 형태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녹지 않던 단백질을 녹일 수도 있었습니다. 패러다임 쉬프트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큰 성과였죠.


삶은 달걀을 날달걀로 만드는 레시피가 되기까지


그런데 ‘와류로 단백질을 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이 자를 비롯한 연구진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도 이 연구를 임팩트있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와류생성기 실험을 ‘삶은 달걀을 날달걀로 되돌리기’ 실험의 형태로 세상에 소개한 겁니다. 시도는 엄청나게 성공적이었습니다. 캘럼 올몬드에 따르면, 이 연구에 대한 얘기를 TV, 신문, 인터넷 등 모든곳에서 볼 수 있었고, 실험논문은 발행 후 2주간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논문이 되었다고 합니다.



캘럼 올몬드는 아마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 같습니다. 물론 실력이 뒷받침 되었으니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 있었던 거겠죠.





삶은 달걀을 날달걀로 바꾼 업적으로 이그노벨상을 받다


‘날달걀 레시피’를 만든 이 과학자들은 한번 웃고 그 다음 생각하게 하는 노벨상의 패러디, 이그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레고리 와이스 교수는 30초간의 수상소감으로 삶은달걀과 날달걀을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지퍼백에 삶은 달걀과 날달걀을 가져오는데 섞여버렸다며, 이를 잘 구분하는 하이브리드 기술로 ‘망치’를 소개했습니다. 각 계란을 망치로 부순 뒤, 날계란과 삶은 계란을 각각 접힌 단백질과 펴진 단백질로 소개했죠.


이들의 논문에 따르면 ‘잘못 접힌 단백질’로 인한 문제와 관련된 의약, 산업, 환경, 농업과 관련된 문제는 굉장히 쓰임새가 많습니다. 단백질을 약으로 만들 때 구조가 꼬여버린다면, 다시 풀어서 제대로 접어야 하는데 그게 쉬운게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와류생성기를 쓰면 가능합니다. 이들의 논문에서는 잘못 접힌 단백질과 관련된 시장은 1600억 달러(18조)이상일 정도로 중요하다고 연구의 의의를 설명합니다.




어쨌거나 이 발견을 풀어낸 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탁월하네요.



<참고자료>


https://www.improbable.com/2018/06/25/commercializing-the-prize-winning-egg-unboiling-machine/

https://www.improbable.com/ig/winners/

“Shear-Stress-Mediated Refolding of Proteins from Aggregates and Inclusion Bodies,” Tom Z. Yuan, Callum F. G. Ormonde, Stephan T. Kudlacek, Sameeran Kunche, Joshua N. Smith, William A. Brown, Kaitlin M. Pugliese, Tivoli J. Olsen, Mariam Iftikhar, Colin L. Raston, Gregory A. Weiss, ChemBioChem, vol. 16, no. 3, February 9, 2015, pp. 393–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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