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다 보면
가끔 머리를 얻어맞는 순간이 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
어디선가 ‘툭’ 하고 맞은 듯
순간 정신이 멍해지고,
마음이 멈춘다.
그날이 그랬다.
가방 제작 공장 여사장님과의 거래에서 일이 틀어졌다.
우리가 보낸 인쇄 시안에 문제가 있었고,
사장님 측 인쇄팀도, 우리 팀도
그걸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인쇄물이 나왔다.
이미지는 유실되었고,
인쇄의 한 귀퉁이가 비어 있었다.
나는 ‘파일은 완벽했다’고 주장했다.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최종 시안에서 한 번 더 확인했어야 했다는 것.
그건 결국,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일이다.
그래서 나는,
파일을 제대로 전달했다는 이유로
이번만은 제작비를 저렴하게 도와달라 요청했다.
솔직히 말하면,
미안한 마음보다는
억울한 감정이 조금 더 컸다.
직원은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됩니다. 이건 저희 실수가 아닙니다.”
그날 저녁 늦게,
전화가 왔다.
가방 제작 공장의 여사장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사장님, 저 사업 하루이틀 한 게 아니에요.
하다 보면 손해 볼 때도 있고,
벌 때도 있어요.”
나는 말이 막혔다.
“이번 건 저희가 그냥 해드릴요.
잘 손해 보는 것도 사업이에요.
대신 다음에도 우리 찾아 주세요.”
전화를 끊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마치 머리를 단단히 얻어맞은 사람처럼.
그녀는 손해를 보면서
기회를 만들었고,
책임을 나누지 않으면서
신뢰를 키웠다.
그게 ‘사업’이라는 걸,
그날 알았다.
진짜 사업은
서류와 단가 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이후로,
나는 가방 제작을 맡길 때
무조건 그 여사장님에게 견적을 받는다.
아무리 다른 곳이 싸다 해도
그 말 한마디가
나를 묶었다.
“잘 손해 보는 것도 사업이에요.”
그녀에게서 배운 건
물건보다 태도였고,
이익보다 방식이었다.
나는 가끔 묻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문제가 생겼을 때
말의 톤 하나로 안심을 주고,
손해를 감싸 안는 넉넉함으로
다음 거래를 예약하는 사람.
쉽지 않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단가 100원 차이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하지만 사람은
늘 숫자가 아닌 순간으로 기억된다.
그 여사장님처럼,
“이번엔 내가 할게요”라는 그 말 한마디처럼.
나는 오늘도 사업을 한다.
이익을 계산하고,
일정을 조율하고,
거래처와 메일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조용히,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그 사람은 사람이었다”라고 기억될 수 있는 사업가.
잘 벌기도 하지만
잘 손해 보기도 하는 사람.
그날,
나는 견적을 받은 게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