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자고 한 게 아닙니다.

by 이손끝



메일이 와 있었다.

제작이 종료된 건에 대해 연락이 온 것이었고,

나는 그럴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나름대로의 ‘매뉴얼’이 있었다.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한 남자 대표가

6개월 전 주문했던 명찰에 대해 연락을 해왔다.

불량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6개월.

이미 충분히 지나간 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조치해 줄 수 없는 건데.”


그리고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메일로 그렇게 보냈다.


하지만, 메일을 보낸 지 한참 지나지 않아

전화가 걸려왔다.

수신자 표시를 보자마자

심장이 조금 빨라졌다.

나는 마음속에서 이미

‘클레임’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고 있었던 것 같다.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낮고 또렷했다.

내가 메일과 같은 말을 반복하자,

그는 잠깐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저… 싸우자고 전화드린 건 아닙니다.

해결 방법을 찾자고 전화드린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이미 그를 ‘문제 제기자’로 몰아세운 채

대화를 시작했던 거였다.


나는 부끄러워졌고,

다시 말의 속도를 늦췄다.

그의 말투는 조용했지만 확고했다.


우리는 통화를 이어가며

문제가 발생한 이유를 찾았다.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앞으로 같은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럼에도 문제가 또 생긴다면

다른 제품으로 바꾸는 건 어떨지.


그렇게,

나는 그와 다시 거래를 하게 됐다.

같은 물건은 아니었지만

더 나은 방법으로

더 나은 관계를 다시 세우게 된 셈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고객이 무조건 ‘환불하자’고 전화를 걸어오는 건 아니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됐다.


말의 시작이 ‘문제’였을 뿐,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함께 풀어갈 수 있느냐’는 질문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조금은 더 우호적인 방향으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사업을 하며 배운다는 건

이런 거였다.

가격을 낮추는 법도,

이익을 남기는 법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문제를 대하는 내 얼굴이었다.


그날,

나는 또 한 번 배웠다.

해결보다 태도가 먼저였고,

그 태도는 결국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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