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생각하다.
《父母》 — 아비 부(父), 어미 모(母)
나는 이혼가정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내 곁엔 엄마가 없었다.
그 사실은 설명보다 빈자리로 남았다.
누구는 자연스럽게 부르는 이름 하나를
나는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뇌곤 했다.
엄마.
그 단어 앞에서는 늘 한 발 물러섰다.
교실에서도, 동네 놀이터에서도.
부르면 울컥할 것 같은 말이었다.
대신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늘 뭔가를 쥐고 있었다.
공구, 장바구니.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父(아비부) — 손에 도끼를 쥔 모습에서 온 글자라는 걸.
그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했다.
왜 하필 도끼일까.
왜 하필 손에 무언가를 들어야 했을까.
그러나 금세 알 것 같았다.
삶이라는 건 늘 뭔가를 들어야 하는 일이니까.
먹고살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자신조차 지탱하기 위해.
아빠도 그랬다.
삶을 쥐고 사는 사람이었다.
손에 도끼가 아니라,
무거운 하루들이 쥐어져 있었다.
나는 아빠의 손등을 기억한다.
거칠고 마른 손등.
그 손은 나를 자주 쓰다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손으로 우리 집을 버텨냈다.
그걸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父 — 아버지란 결국 짊어지는 자리다.
마음이 아니라 손끝으로 전해지는 자리.
나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엄마라는 자리는 비어 있었다.
母 — 젖가슴 있는 여성의 형상.
먹이고 품는 존재.
그것이 母의 뜻이었다.
나는 그 품을 배우지 못했다.
누군가의 품에 파묻혀 울어본 기억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늘 그 품을 궁금해했다.
품이란 어떤 것일까.
포근한 품이란 어떤 온도일까.
그 속에선 어떤 숨이 쉬어질까.
그 질문은 자라는 내내 내 안에서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았다.
나는 이제 두 딸의 엄마다.
나는 엄마가 없었지만, 엄마가 되었다.
그게 때로는 겁이 났다.
나는 품을 배운 적이 없는데, 품어야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그러나 사람은 배우는 존재다.
사람은 사랑으로 조금씩 만들어지는 존재다.
나는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조용히 그 작은 등을 쓸어준다.
그것이 품이길 바라며.
그것이 아이들에게 엄마의 온도로 남길 바라며.
부모라는 말은 참 멀고도 가깝다.
나는 부모가 되어서도 여전히 부모라는 이름을 더듬는다.
내가 겪지 못한 부모라는 자리 앞에서 늘 조심스럽다.
그러나 부모는 완성된 자리가 아니다.
매일 새로 배우는 자리다.
나는 두 딸을 키우며,
때로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가 왜 무뚝뚝했는지, 왜 품이 부족했는지.
그는 품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이 부모가 되면,
배운 만큼만, 가진 만큼만 품을 내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안다.
나는 그 길을 다르게 가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품을 주고 싶다.
부족하더라도.
서툴더라도.
나는 오늘도 아이들 방문 앞에서 숨을 고른다.
닫힌 문 앞에서도 마음은 열고, 손끝은 따뜻하게 두고 싶다.
나는 아이들의 엄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딸이다.
빈자리를 안고 자란 딸이다.
그래서 부모라는 말은 나에게
가장 가까운 말이면서,
끝내 닿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나는 오늘도 품는다.
내 아이들이 언젠가 빈 품이라는 말을 모르고 자라기를 바라며.
언젠가 누군가에게 품 많은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나는 오늘도 그렇게 부모가 된다.
서툴지만, 애쓰면서.
그것이 내가 아는 부모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