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눈이 각자 바라보는 것들.

시력

by 이손끝


《視力》 — 볼 시(視), 힘 력(力)


내 시력은 양쪽이 다르다. 5년 전 라섹 수술로 균형을 맞췄을 땐 뿌듯했었다. 왼쪽도, 오른쪽도 모두 선명했고, 세상이 동시에 정리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오른쪽 눈이 흐리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피곤해서겠지, 일시적이겠지. 그러나 흐림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마치 누군가가 오른쪽 눈에만 얇은 비닐을 덧씌운 것처럼, 세상의 윤곽이 늘 미세하게 번졌다.


저녁이 되면 피로가 눈으로 몰려왔다. 눈이 가렵고 따끔거리고 주위가 왕왕거렸다. 통증이 어깨나 허리가 아니라 눈에서 시작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아이를 재운 밤이면 나는 어두운 거실 한구석에 앉아 안약을 꺼냈다. 늘 아픈 건 잘 보이는 왼쪽 눈이었다. 아이러니했다. 분명 오른쪽 눈이 더 흐리게 보이는데, 아픈 건 왼쪽이었다. 늘 선명한 쪽이, 자주 아팠다. 병원에서 받은 처방 안약을 조심스럽게 떨어뜨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얘만 이렇게 아플까.’


視. ‘볼 시’는 보통 눈을 뜻하는 목(目)과 볼 관(見)의 결합으로 보이지만, 본래는 사람의 눈과 그 앞에 놓인 모습을 뜻한다. 시각은 단순히 보는 능력이 아니라, 바깥과 나 사이의 관계다. 나는 늘 오른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밤이면 침대에 누워 오른 눈 쪽으로만 빛을 받았다. 그게 하루이틀, 몇 달, 몇 년. 어느새 오른쪽 눈은 어두운 곳에서 휴대폰의 밝음을 혼자 떠안았고 조금씩 시력을 잃었다.


力. ‘힘 력’은 밭을 가는 쟁기에서 유래한 글자다. 단단한 흙을 밀고 나가는 도구. 눈의 힘은 흙을 가르는 쟁기처럼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닳는다. 나는 낮동안 왼쪽 눈으로 살아간다. 문서도, 디자인도, 화면도, 책도 전부 왼쪽 눈을 앞세워 본다. 시력이 나쁜 오른쪽은 여전히 세상에 머뭇거리고, 잘 보이는 왼쪽 눈은 앞에 나선다. 그래서일까. 잘 보인다는 건 더 많이 본다는 뜻이었고, 더 많이 본다는 건 더 많이 견뎌야 한다는 뜻이었다.


왼쪽 눈은 그런 존재다. 밝고 선명해서, 그만큼 더 자주 피로해지는 동반자. 오른쪽 눈의 흐림을 대신해 낮을 버티는 쪽. 한밤중의 어두운 빛 아래서 하루의 피로를 다 짊어지는 쪽. 그래서 나는 그 눈에 하루에 몇 번씩 안약을 넣는다. 안약은 단지 약이 아니라, 나의 작은 미안함이자 감정의 손길이다. “수고했어”라는 말을 할 수 없으니까, 고개를 약간 뒤로 젖히고 눈을 뜨게 한 다음, 한 방울을 천천히 떨어뜨린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내 몸에서 서로 다른 두 존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둘 다 나지만, 둘이 꼭 같은 방향을 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시력의 차이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삶의 굴곡 같다. 어느 한쪽이 밤을 버티는 동안, 다른 한쪽이 낮을 견디는 일. 그렇게 내가 살아왔다.


요즘은 책을 읽거나 모니터를 오래 보면 왼쪽 눈이 가장 먼저 반응한다. 따끔하거나, 모래알이 들어간 것처럼 건조해진다. 그래서 늘 작은 안약병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늘 잘 보인다는 건, 늘 잘 살아야 한다는 말 같아.’ 그런 생각을 하면 괜히 왼쪽 눈이 짠해진다. 그래서 나는 어느새, 왼쪽 눈을 내 삶의 동반자처럼 느끼고 있다. 나를 위해 하루를 살아주는 또 하나의 나. 잘 보인다는 이유로 더 많이 지치고, 더 자주 고장 나는 나의 왼쪽 눈.


視力. 보는 능력이라는 말 안에는 사실 ‘두 눈이 함께 보는 일’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늘 그렇지 않았다. 함께 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한쪽이 더 애쓰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이제야 안다. 몸은 말하지 않지만, 오래된 생활 습관은 결국 형태가 되어 나타난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밤의 자세가 내 시력을 갈랐고, 한쪽 눈을 지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씩 자세를 고치려 한다. 습관을 돌려보려 한다. 눈 하나를 덜 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조금 더 신경 써보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눈에게 자주 말해주려 한다. 잘 보이든, 흐리게 보이든,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덜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쪽 눈이 밤을 버텼고, 다른 눈이 낮을 견디고 있다.

그 둘이 함께 내가 본 하루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지금도 세상을 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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