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일하는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집중.

by 이손끝


나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집중하지 않는 고객을 가장 꺼린다. 상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느껴지는 산만함. 자료 전달은 흐트러져 있고, 정리는 덜 되어 있다. 시안은 보내자마자 “네, 진행해 주세요. 언제 받을 수 있나요?”라는 빠른 답이 돌아오지만, 그 속에 확인의 머무름이 없다. 작업물 수령에 대한 재촉만 있다. 화면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는 걸, 그 사람의 말투가 알려준다.


나는 그런 짧은 집중을 안다. 잠시 들어왔다가 바로 나가버리는 사람들. 그들은 ‘확인했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거의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글자와 이미지를 훑고, 마음은 다른 데 가 있다. 내가 분명히 설명한 부분을 다시 묻는 일이 반복될 때면, 그게 단순히 깜박했단 것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알게 된다. 마치 내가 말한 적이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되묻는 순간, 나는 그 사람과의 협업이 어딘가 잘못 가고 있다는 걸 직감한다.


가장 피로한 건, 집중하지 않는 사람이 결과에 대해서만 반응할 때다. 시안은 인쇄의 전단계다. 마지막 확인이다. 인쇄란 한 번 지나면 되돌릴 수 없는 일이기에, 그 시점에서의 ‘확인’은 굉장히 무겁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너무 가볍게 넘긴다. 시안을 보는 시간은 짧고, 피드백은 추상적이며, 오탈자나 구조를 세심히 보는 기색은 없다. 그렇게 인쇄물이 완성된다. 그리고 그제야 말한다. “여기, 잘못됐네요. 다시 해주세요.” 나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답한다. “그 내용, 시안에서 확인하셨던 부분입니다.”


나는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시안을 확인한 책임은 고객에게 있다고 바득바득 눈앞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금전적 손해를 보고 속상해할 고객의 마음을 헤아려 책임을 함께 져주는 선택을 훨씬 더 많이 한다. 다시 해드리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집중하지 않는 태도는 실수보다 더 깊은 피로를 남긴다.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무관심이기 때문이다. 함께 만든다는 감각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작업자가 아니라 청소부가 된다. 누군가의 부주의를 뒷정리하는 사람.


그럴 때 나는 고객에게 마음이 식는다. 문장은 여전히 정중하지만, 정성은 빠져나간다. 마음이 함께 가지 않는 일은 이상하게 손끝에도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나는 알고 있다. 집중이란 단지 주의력의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향한 존중이라는 걸. 내가 건넨 시안을 빠르게 넘긴다는 건,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시간과 선택들을 흘려보낸다는 뜻이다. 그렇게 흘러간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단지 내 맘이 식어서가 아니다. 높은 확률로 그들은 또다시 같은 풍경을 만들고, 나는 정중히 더 이상의 진행을 사양한다.


나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 정확하게 묻고, 신중하게 답하며, 함께 책임을 나누는 사람. 대화가 땅을 딛고 있는 사람. 말의 결이 또렷하고, 피드백에 손맛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과의 작업은 유난히 따뜻하고, 묵직하게 남는다.


나는 자르고 끊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집중하지 않는 사람과는 깊은 호흡이 불가능하다는 걸. 그 관계는 오래 끌수록 번지는 피로와 상처만 남긴다. 나는 함께 만든다는 감각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그 감각이 없는 일은 오래 마음에 남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다시 해드릴 수는 있지만, 다시 함께하고 싶지는 않다고. 나는 작업이 아니라 관계를 만들고 싶다. 함께 만든다고 말할 수 있는 작업, 함께였기에 더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 그런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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