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 디자인을 위해 협업 파트너를 만났다. 나는 많은 요청을 했다. 자료가 많았고, 디자인 구성은 복잡하고 화려했다. 명확한 기획 의도, 촘촘한 요소 정리, 이미지 파일 수십 개까지. 받는 사람 입장에서라면 조금 숨이 찼을지도 모른다. 디자이너에게 전달하면서도 내심 ‘이건 좀 부담스럽겠는데’ 싶었다. 보통이라면 추가 요금 이야기가 오가거나, 일정 조율부터 신경질적인 말투가 따라붙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하지만 그 디자이너는 달랐다. 작업의 양에 대한 언급도 없이, 상냥하게 말했다. “예쁘게 작업해 드릴게요^^” 문장 끝에 붙은 웃는 이모티콘 하나. 그 한 줄에서 느껴지는 건 기술이 아닌 태도였다. 실력보다 먼저 마음이 도착했다.
그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다. 아직 디자인을 보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먼저 믿음을 만들어냈다. 예쁘게라는 단어는 ‘잘’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말이었다. 정확하게, 빠르게 라는 단어들 대신, 예쁘게. 그 말엔 다듬어진 손끝이 아니라 다정한 눈빛이 담겨 있었다.
작업 완료일을 공지했음에도 디자이너는 진행 상황을 자주 알려왔다. “메인 배너는 이런 구도로 구상 중이에요 :)” “폰트는 이 느낌인데 너무 무거운가요?” 같은 메시지들이 메신저에 쌓여갔다. 내가 요청한 일은 복잡했지만, 그 사람은 작업처럼 굴지 않았다. 요청서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이어나가는 사람이었다. 나는 점점 더 그가 보여주는 문장들에서 사람의 온도를 느꼈다. 말투는 일정한 리듬을 타고 나에게 안정을 주었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은 부담이 아니라 기대가 되었다.
그 사람이 너무 예뻐 보였다. 사람 자체가 예쁘다는 말은 사실 굉장히 드문 표현인데, 그날 나는 정확히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작업 중간에 스타벅스 커피 쿠폰을 보냈다. “작업하시면서 드세요.” 내가 준 건 커피 한 잔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던 건 내 마음 한 숟갈이었다.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런 다정함을 오래 응원하고 싶다는 마음.
나는 초심을 잃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디자이너로써 나라면 이런 태도로 작업하지 못했을 것 같았다. 그동안 나는 익숙함이라는 이름으로, 거래라는 이름으로, 일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지나쳤다. 요청하고 검토하고 승인하는 사이에 따뜻함은 종종 생략되었다. 하지만 그 디자이너는 그 생략된 부분을 말 한마디로 되살렸다. “예쁘게 해 드릴게요.” 그 말은 서비스가 아니라 마음의 말이었다.
어릴 적 어른들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말 이쁘게 하면 공짜야.” 어릴 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말 한마디에 뭐가 공짜냐고.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말이 공짜라는 건, 돈이 들지 않아도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다는 뜻이다. 말이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다시 따뜻한 관계를 만든다.
결과물은 아직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걱정되지 않는다. 설령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실망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그 사람이 먼저 보여준 말투와 태도가 결과보다 오래 기억될 거니까. 말이 반이라는 말, 오늘은 그보다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말이 반이 아니라 말이 전부였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