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지 않은 일을 묻는 사람

by 이손끝


직장생활을 할 때 나는 자주 의욕을 잃었다.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이 공정은 왜 이렇게 되어 있는지, 이 불량은 진짜 폐기해야 하는 건지, 재가공은 가능한 건지, 손실은 어떻게 반영되는 건지—그런 걸 묻는 나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그런 건 알 필요 없어요.” 어떤 땐 회사 기밀이라며 설명을 피했고, 어떤 땐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 뿐이었다.


나는 시키지 않은 일에 관심이 많았다. 주어진 일만 하면 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자꾸만 구조를 파고들고 원리를 궁금해했다. 그래서였을까. 선을 넘는 사람처럼 보였고, 회사는 그 호기심을 귀찮은 태도로 여겼다. 나 스스로도 안다. 그건 어쩌면 직원의 자세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고졸이었다. 그리고 회사는 그 사실을 절대 잊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오랜 시간 후보에 올라 있어도, 결정적인 순간엔 늘 학력이 높은 사람이 진급했다. 실무 능력보다 졸업장이 먼저였고, 현장에서 쌓은 경험은 ‘부족한 자격’ 아래 깔려버렸다. 나는 그걸 이겨보려 무던히 애썼다. 실수하지 않으려 더 노력했고, 보이지 않는 빈틈도 찾아내려 했다. 그러나 내 노력이 끝내 부정당할 거라는 예감은 점점 확신이 되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 안에서는, 나의 능력을 끝까지 써볼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가진 에너지는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 만큼 충분했지만, 쓸 수 있는 공간은 정해져 있었고, 열려 있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결심했다. 내가 나를 쓰는 공간을 직접 만들기로. 창업이었다.


그 선택이 지금 돌아보면 너무도 명확히 맞는 판단이었다. 지금의 나는, 예전 회사에서 허락받지 못했던 모든 ‘질문’을 내 사업 안에서 마음껏 꺼내고, 파고들고, 바꾸며 일한다. 불량이 나면 버리는 게 아니라 구조를 재설계하고, 손실이 나면 이유를 추적해 고객 응대를 다시 짠다. 그때 내가 묻던 것들(왜, 어떻게)은 이제 나의 의사결정 근거가 되었다.


사업을 하며 가장 혼란스러웠던 건, 오히려 직원이었다. 지시하지 않은 일엔 관심이 없고, 전체 구조보단 눈앞의 작업만 기계적으로 하는 모습. 예전의 내가 상처받았던 그 태도를, 나는 이제 ‘정상적인 직원의 자세’로 이해해야 했다.

주위 사람들은 그랬다. “직원은 절대 경영적 마인드로 고민하지 않아.” 맞는 말이었다. 모두가 사장일 수는 없고, 모두가 문제를 파헤치려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걸 대견하게 여긴다. 내가 일하는 방식을 믿지 못하고, 설명을 듣지 못하면 의욕을 잃고, 실체 없는 기준에 밀려나는 걸 참을 수 없던 사람. 그 사람이 결국 내 사업을 만들었고, 나를 이 자리까지 데려왔다.


고졸이라는 이유로 승진이 어려웠던 그 시절의 나에게 이제 말할 수 있다. 네가 틀리지 않았다고. 시스템을 이해하고 싶어 하던 너의 마음이 멋지다고. 남들이 보기엔 사서 고생이었겠지만, 그 고생이 너의 언어였고, 너의 가능성이었다고.


나는 지금도 시키지 않은 일에 마음이 간다. 왜 그래야 하는지를 먼저 묻고, 구조를 먼저 이해하려 애쓴다. 그건 단순한 집착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일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유를 아는 사람이 되었고, 사장으로서 다른 누군가에게 ‘그건 네가 알 필요 없어’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 말이 얼마나 마음을 무너지게 하는지 알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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