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에서의 톤 앤 매너
오늘은 한 거래처에 전화를 걸었다. 상품 구성 때문에 사이즈를 알아야 했고, 그걸 토대로 패키지를 만들어야 했다. 판매처에 상품 사이즈를 묻는다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홍보물품을 제작하는 업체로썬 당연한 일이다. 나는 업무처럼 담담하게 수화기를 들었다. 상대는 좀 느릿하게 전화를 받았고, 나는 필요한 말을 간단히 전했다. 그런데 목소리의 결이 이상했다. 단어는 예의 바른데, 그걸 던지는 톤은 그렇지 않았다. 어딘가 퉁명하고, 귀찮다는 뉘앙스가 자꾸 묻어났다. 확인이 필요하다며 메일로 내용을 보내달라고 했고, 나는 그렇게 했다. 메일을 보냈지만 몇 시간째, 아무런 답도 없었다. 수신확인도 안 된 채로 메일은 읽지 않은 편지함 속에 있었다. 통화 말미에 “네,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분명 있었다. 그런데 그 말이 조금도 고맙게 들리지 않았다. 너무 짧았고, 너무 딱딱했다. 나도 “감사합니다”라고 답했지만, 그 말이 부메랑처럼 내 쪽으로 다시 튕겨오는 기분이었다. 말은 예의였지만, 목소리는 짜증이었다.
문장은 가릴 수 있어도, 톤은 가릴 수 없다. 어떤 말은 그 말의 뜻보다도 훨씬 많은 걸 전달한다. ‘예, 알겠습니다’라는 말이 명랑할 수도 있고, 무서울 수도 있고, 정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말을 듣고도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낀다. 톤은 문장 바깥에서 건너오는 마음의 자세 같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전화는 날카롭진 않았지만, 둔하게 아팠다. 칼날이 아니라 돌멩이에 맞은 것처럼, 아프다기보다도 무겁고 찜찜한 기분이 남았다. 일은 일이니까, 감정은 감정대로 접어둔 채 다시 다음 업무를 이어갔지만, 마음 어딘가에서는 그 통화가 자꾸 떠올랐다. ‘왜 그렇게 퉁명했을까’, ‘그쪽도 많이 지쳐 있었던 걸까’, ‘내가 뭔가 불편하게 했던 걸까’…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이런 생각으로 닿는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비즈니스를 오래 해보니 알겠다. 일이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다리 위에 감정이라는 구조물이 빠지면 언젠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걸. 정확하고 빠르게,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의 말투, 한 마디의 어조가 상대에게 얼마나 큰 기억으로 남는지도 안다. 어떤 거래처는 아무리 일이 많아도 통화 한 번으로 기분이 좋아지고, 어떤 곳은 메일 한 줄에도 따뜻함이 묻어난다. 감정이 넘치는 것도 피곤하지만, 감정이 없는 것도 무섭다. 나는 그 사이 어디쯤에서 일하고 싶다. 따뜻한 커피를 마시듯, 진하고 향긋하진 않아도 무난하게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온기. 오늘의 통화는 그런 온기를 앗아갔고, 나는 그걸 복기하듯 반성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나는 내 목소리에 진심을 담아야지’. 나도 누군가에게 퉁명한 사람이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조심하고 싶어졌다.
감정이라는 건 본래 있는 것보다도, 어떻게 드러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안다. 같은 기분이라도 말투에 따라 전혀 다른 인상이 되고, 사람의 마음을 지치게 하기도 하고, 회복시키기도 하니까. 그러니 톤이라는 건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태도이고 인격이고 마음의 높낮이다. 나는 오늘 그 높낮이를 어긋난 전화 한 통에서 느꼈고, 그걸 내 마음속 기준선 삼아 조용히 다짐했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고, 일도 사람처럼 하고, 말도 진심처럼 하자고.
우리는 모두 매일같이 여러 사람과 연결된다. 말로, 문자로, 메일로, 목소리로. 그중 일부는 기억에서 지워지고, 어떤 것은 오래 남는다. 말은 사라져도, 그때의 어조는 오래간다. 어쩌면 사람은 그 어조로 사람을 기억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 한 사람의 어조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내일 누군가 나를 통해 또 다른 어조를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조심해야겠다. 말의 내용보다 말의 분위기, 글보다 말투, 효율보다 태도. 그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조금씩 나를 다듬는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아니, 그보다 먼저는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게, 일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세상에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예의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