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 가지고 되게 집착하네요.

by 이손끝


ChatGPT Image 2025년 7월 22일 오전 09_54_08.png


일을 하다 보면 잊히지 않는 문장들이 내 안에 남게 된다. 그날 내가 들은 그 문장은 아마 잊긴 어려울 것 같다. 이 회사는 몇 년 전부터 명함을 제작하던 곳이었다. 처음 거래가 시작될 땐 꽤 큰 규모로 갈 거라고 말했다. “직원 수가 많아서요. 명함이 매달 수십 건은 나올 거예요.” 나는 그 말을 믿었고, 그래서 단가를 낮게 잡았다. 다른 업체 납품가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재료비에 인건비 조금만 더 얹는 수준으로. 주문량이 많다면, 단가를 낮춰도 전체 수익은 괜찮겠지 하는 계산이었다. 결제 방식도 후불로 해줬다. 규모가 있는 건설회사로 보였고, 담당자의 말투도 나긋하고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주문은 두세 달에 한 번, 그것도 두세 건이 전부였다. 말했던 ‘매달 수십 건’은 오지 않았다. 게다가 결제일도 자꾸 어겨졌다. 매번 “이번 주 중에 입금할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같은 말로 시간을 끌었다. 나는 내부적으로 따져봤다. 단가를 올리는 건 약속을 깨는 일 같고, 후불은 이제 무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선불 요청을 드렸다. 미안하지만, 앞으로는 입금 확인 후 제작하겠다고. 담당은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동안 거래가 뜸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이 회사의 대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급한 목소리였다. 명함이 너무 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입금하겠다고, 상황이 정말 급하니 제작부터 해달라고.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나는 수락했다. 말에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그런 상황에 약하다. 급하다는 말, 지금 꼭 필요하다는 말. 그런 말에 선한 마음이 움직인다. 그렇게 명함을 제작했고, 예정대로 다음 날 발송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약속한 입금은 들어오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나는 메시지를 보냈고, 답이 없었다.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다시 연락이 닿은 건 닷새쯤 되었을 때였다. “오늘 입금할게요.” 그리고 또 내일. 그리고 다시 내일.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속이 끓었고, 슬슬 약이 오르기도 했다. 계속 전화를 걸었다. “입금 꼭 부탁드립니다. 이미 발송된 건이고, 저도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때였다. 대표님이 내게 말했다. “푼돈 가지고 되게 집착하네요.”


그 말. 나는 그 한마디를 아직도 기억한다. 앞뒤 문장은 기억나지 않고, 정확히 그 문장만 기억난다. 푼돈. 건설회사 입장에선 2만 원이 정말 푼돈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2만 원을 하루 몇 번이고 나누어 벌어서 모아야 하는 사람이다. 내 하루는 그런 푼돈들을 조심스럽게 이어 붙여 만든 노동의 조각이다. “푼돈”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돈보다도 마음이 부서졌다. 내가 만든 걸 그렇게 말해도 되는 건가. 내가 그동안 해온 수많은 인쇄물이,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존재일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나는 그 말을 쉽게 넘기지 못했다. 마음 한쪽에서 끓고 있던 자존심과 자책이 뒤섞여,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이후로 나는 방침을 바꿨다. 절대 입금 확인 전에는 제작하지 않는다. 급한 사정도 예외가 아니다. 상대가 누구든, 금액이 얼마든. 상처는 사람을 변하게 한다. 나는 더 단호해졌고, 더 조심스러워졌다. 지금도 가끔 누군가가 ‘급하게 필요한데 지금은 입금이 어렵다’는 말을 꺼내면, 그때의 그 말이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된다. 푼돈 가지고 되게 집착하네. 나는 그 말을 지워버리는 대신, 기준선으로 삼았다. 사람을 불신하지는 않지만, 나를 지킬 경계는 확실히 세우자고. 내가 매일같이 다루는 물건들이 아무리 작고, 저렴하고, 일상적이라 해도 그건 결코 푼돈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만들어내는 하루의 결과이고, 그 하루가 모여 나를 살아가게 한다. 누구에게는 작고 하찮은 것일 수 있지만, 내겐 그 작은 것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설명해 준다. 나는 그 일 이후로 더 이상 ‘작은 돈이라 덜 신중해도 된다’는 태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 한마디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푼돈은 내 삶의 본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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