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의 디자이너

by 이손끝


ChatGPT Image 2025년 7월 24일 오전 11_51_13.png



디자인과 인쇄는 가깝지만 다른 언어를 쓴다. 서로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믿지만, 어떤 선에서는 다른 톤을 쓰고 있다. 디자이너가 ‘이 색깔’이라고 지정한 것은 인쇄소에겐 "저 색은 안 나옵니다"로 돌아온다. 출력기를 탓할 수 없고, 인쇄법을 설명하고 기술의 한계를 탓한다고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고객은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본 시안 그대로 나오게 해 달라”라고 말한다. 디자이너는 그 사이에서 멈칫한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는 말을 씁쓸하게 남긴 채.


나는 그 사이에 오래 있었다. 디자인을 했고, 인쇄를 맡겼고, 고객을 만났다. 각자 너무나 다른 사정을 품고 있다. 고객은 결과를 본다. 디자이너는 화면을 본다. 인쇄소는 작업방법과 시간, 기계의 컨디션을 본다.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동시에 모두 옳은 말도 아니다. 그 어정쩡한 회색지대에 내가 있다. 어쩌면 내가 가장 자주, 가장 오래 손해 보는 자리에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설명으로 안 된다. 아무리 말을 잘 꾸며도, 이해되지 않는 감정은 있다. “환불해 드릴게요”라고 말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잘못이 아니어도, 누군가가 그 사각지대를 감당해야 할 때, 내가 내 지갑을 연다. 인쇄소는 그럴 이유가 없다. 고객은 그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해 달라고 애써 설명하는 것도 고역이다. 그래서 그냥 내 몫으로 삼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되뇐다. 이런 상황이 자주 생기면 안 된다고.


나는 실은 더 나은 관계를 원한다. 인쇄물의 기술적 한계를 이해해 주는 고객을 만나고 싶다. 요구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요구는 당연하다. 다만, 그 요구가 ‘모두 다 가능하다’는 전제로만 작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CMYK의 한계, 용지의 컨디션, 합판작업의 색영향, 후가공 공정에서의 수율 차이. 그런 건 누구도 일부러 발생시키지 않는다. 기술이라는 건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이다. 그 간극을 단번에 이해해 주는 고객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아주 가끔 있다. 인쇄를 많이 맡겨보신 경험이 있는 분. 그럴 땐, 정말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인쇄소 쪽에도 기대가 있다. 고객의 예민한 요구에 무조건 ‘안 된다’고 자르지 않고, 단 한 번이라도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업체를 만날 수 있다면. 그건 무리한 요구를 전제로 하는 게 아니다. 그냥 노력해 보겠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동료애 같은 걸 느낀다. 일이라는 건 결국, 서로의 현실을 조금씩 인정하면서 좁혀가는 과정이니까.


그렇게 나는, 오늘도 디자인과 인쇄 사이에 선다. 고객과 기계 사이에 서 있다. 내가 하는 일은 화려하지 않다. ‘감성디자인’이라는 말 뒤엔 스프레드시트와 견적서, 하자보수와 AS의 기록이 한가득 쌓여 있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하는 이유는, 그래도 누군가는 "예뻐요. 다음에 또 맡길게요."라며 웃기 때문이다. 그 미소 하나에, 나는 또 한 장의 작업을 시작한다.


나는 점점 실무형 디자이너가 되어간다. 트렌드보다 기술을 이해하고, 센스보다 공정을 예측하는 사람. 그게 싫지 않다. 외려 그것이 내가 살아남는 방식이다. 내가 있는 이 작은 영역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번역가가 되는 일. 그게 내 디자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푼돈 가지고 되게 집착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