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 한 번 해봤기 때문이다.

by 이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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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 있는 공간은 나에게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다. 유치원생이던 첫째 아이와 함께 걸레질을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곳. 내 첫 사업의 기점이자 삶의 무대였다. 이 작은 공간에서 나는 웃었고, 울었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어느 시점엔 직원이 셋이나 되는 규모로 확장됐고, 브랜드도 몇 개 기획했다. 기세 좋았던 사업들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정리되기도 했고, 직원의 돌연한 퇴사와 매출 하락에 사업 방향은 물론 나의 태도까지 재정비했다. 무언가를 벌리는 일보다 줄이는 일이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것도 이곳에서 배웠다.


개인적인 삶도 달라졌다. 둘째가 태어나며 하루에 쓰는 에너지가 이중, 삼중이 됐다. 집도 이사했고, 그 후로 사무실과의 거리는 멀어졌다. 출퇴근하는 길이 점점 힘들게 느껴졌고, 일상은 복잡해졌다. '단순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아이의 방학이 시작되자 사무실이 집과 가까워야 한다는 필요가 확실해졌다. 이동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줄이면 아이의 하교 후를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도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내 일이란 가족의 행복을 위해 지속되는 것이니까.


지금은 역대 최고로 매출이 적은 시기지만, 이상하게도 더 이상 이 상태로는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집 근처 상가 임대료는 지금 사무실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평소 같았으면 엄두도 안 냈을 테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내 머릿속을 맴도는 건 다름 아닌 '그때처럼'이라는 말이다. 처음 사업을 시작하던 날을 떠올린다. 매출은 거의 없었고,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도 호기롭게 계약했다. 일단 계약서를 쓰고 나면, 그다음은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사실 그보다 더 전에는 집에서 일을 시작했었다. 그땐 고객이 사업장을 물을 때마다 움츠러들었다. 명함에 주소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신뢰를 잃기도 했고, 내가 진짜 사장이 맞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사무실을 얻고 난 후로 고객들의 시선은 달라졌다. 방문하는 사람들의 대우도 바뀌었고, 나 자신도 뭔가를 책임지는 태도로 달라졌다. 공간이 바뀌면 태도도 바뀐다. 공간이 바뀌면 일의 기세도 바뀐다.


‘공간이 운을 불러온다’는 말, 나는 그 말을 믿는 편이다. 이전 사무실 계약을 하고 나서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던 일. 그 기운이 이번에도 반복되기를 바라며 나는 다시 배짱을 꺼내든다. 아직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지만, 인생이 언제 확신을 주었던가. 불확실함은 언제나 나의 시작점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다시, 조금은 덜컥, 조금은 조심스럽게, 계약하러 간다.


1인 체제로 모든 업무를 다시 세팅할 계획이다. 이제는 누군가에게 일을 맡기고 기다리는 구조가 아니라, 내 시간을 한정되지 않게 쓰기 위한 업무 자동화에 초점을 맞출 거다. 흐트러진 루틴도 다시 단단히 조이고, 내 시간표에 내가 주인이 되는 구조를 만들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는 다시 나답게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공간이 이번에도 내 일을 일으켜줄 수 있을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그 가능성 하나로 나는 움직인다. 다시, 그날처럼. 아이와 함께 설렜던 시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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