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본질적 싸움에 대하여

by 이손끝

며칠 전, 통장에 거래처 이름으로 큰 액수가 찍혔다. 순간 마음이 들떴다. 이 거래처는 주문 단가를 알기 때문에 종종 미리 입금을 하고 나중에 주문을 넣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하며 기다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이상해서 아침에 전화를 걸었더니 담당자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업체가 이미 바뀌었는데 회계팀에서 실수로 내 계좌로 입금한 것이니 환불을 해달라는 거였다.


나는 왜 업체를 바꾸셨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답은 단순했다. 단가가 비쌌기 때문이라는 것. 회사 차원에서 비용 절감을 지시받아 모든 거래처를 재조정하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힘으로 조정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결국 알겠다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니 마음이 텅 비었다. 요즘 들어 기업 거래처가 하나둘 떠나고 있다. 내 영업력이 부족하고 자금력이 약하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졌다. 계속되는 이별 앞에서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더 무너질 멘탈도 남지 않은 듯했지만, 그래도 좌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책상 앞에 앉아 나는 이순신 장군의 말을 떠올렸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질 수밖에 없는 전쟁터에서, 살고자 움츠리면 그 순간 패배가 확정이었다. 반대로 죽을 각오로 덤벼야만 희미한 승산이 열렸다. 그 말은 단순한 용기를 넘어선 진실이었다. 그렇다면 내 삶에서 죽고자 덤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사업은 늘 시험대다. 매출이 오를 때는 내가 잘해서 그런 줄 알았고, 매출이 떨어지면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았다. 최근 들어 계속되는 안 좋은 일들이 어떤 시그널인지 해석하느라 마음이 분주하다. 특히 오늘 같은 순간이야말로 진짜 시험 같았다. 단가라는, 내 힘으로 조정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작아졌다. 이때 살고자 발버둥만 친다면 오히려 더 옭아맬 뿐이다. 결국 죽고자 덤빈다는 건, 떠난 거래처를 붙잡는 데 매달리지 않고 새로운 길을 내는 태도일 것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일을 더 밀어붙여야 할까? 아니면 전환해야 할까. 전환은 싸움을 포기하고 회피하는 것 아닐까? 회피와 전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회피는 두려움 때문에 눈을 돌리는 것이고, 전환은 더 살아내기 위해 선택하는 것이다. 죽고자 덤빈다는 건 도망치지 않고 두려움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다. 값싼 단가 경쟁에서 버티겠다는 집착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본질적 싸움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글을 쓰고,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고, 내 강점을 더 깊게 갈고닦는 것. 그것이 내가 죽고자 덤벼야 할 싸움이 아닐까.


오늘 통장에 찍혔다가 빠져나간 돈은 단순한 입출금이 아니었다. 내게 신호처럼 다가왔다. 돈이 들어왔다가 나가듯, 사람과 거래처도 들어왔다가 나간다. 남는 것은 결국 내가 어떤 길을 만들고, 어떤 태도로 살아남느냐다.


나는 여전히 초라하다. 메일함은 비어 있고, 전화벨은 쉽게 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 구절이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그 아이러니가 오늘의 나를 일으킨다. 내게 죽고자 덤빈다는 건, 더 이상 두려움에 움츠러들지 않고, 나의 본질적 싸움에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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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손끝이 내향인 사장의 사업일기에 연재 중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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